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야권의 새로운 이정표가 생기는 듯 했지만, 4.16 세월호 참사는 후반기에 접어든 19대 국회를 사실상 ‘올스톱’시켰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는 세월호 참사 심판대로 여겨졌지만 ‘경제활성화’를 앞세운 여당의 압승으로 세월호 협상의 키는 새누리당으로 기울게 됐다. 민심은 ‘민생 정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6개월 넘게 이어지자 국회 본연의 역할인 ‘입법’기능이 마비됐다. 국정감사마저 세월호 정국에 휘말려 ‘분리국감’은커녕 ‘부실국감’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2015년도 예산안을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 처리하며 국회는 체면치레했다. 그러나 연말에 불거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정치권이 또다시 요동쳤다.
◆ 야권은 ‘신당 창당’…여권은 김무성 체제 구축
지난 해 정치권의 첫 화두는 야권의 ‘신당 창당’이었다.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과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추진위원회가 결합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명실상부 제1야당으로서의 대중적 지지기반과 민주세력의 세불리기가 성사된 것이다.
민주당은 혹여 ‘안철수 신당’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던 차에 이뤄진 결합인 만큼, 초선 안철수 의원을 당 지도부로 앞세우며 당의 대중적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두고 당내 분란이 일면서 새정치연합 초대 지도부의 지도력은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정당공천제 유지를 당론을 결정하자 ‘새정치’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은 또다시 야권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이를 즈음해 새누리당은 7·14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이 압도적인 격차로 서청원 의원을 물리치고 당 대표에 당선되며 ‘무대(김무성 대표의 별명) 시대’를 열었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 7·30 재보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 지원 유세를 펼쳤고, 그 결과 15곳에서 11곳에서의 압승을 거뒀다.
반면 재보선 15곳 중 4곳만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친 김한길·안철수 대표는 즉각 지도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박영선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지만, 재보선 결과로 지지기반이 약해진 야권은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도 큰 동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 ‘세월호 격랑’에 휘말려 국회 입법기능 마비
지난 해 정치권은 4·16 세월호로 시작해서 세월호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월호 격랑에 휘말린 여야는 특별법 협상 타결까지 6개월이 넘게 그야말로 ‘정치적 무능함’을 여실히 보였다.
정치권이 처음으로 꺼내든 세월호 국정조사 카드는 국정조사특위가 제구실을 못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팽목항 등 현장조사 마저 여야가 따로국밥식 행보를 보였다. 국정조사 기관보고는 사고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을 둘러싸고 여야 설전만 난무하다 끝나버렸다. 국정조사의 핵심인 청문회는 아예 열지도 못했다.
국조에서 별 소득을 못 본 여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까지 야당의 두 차례 인준 불발, 재협상 등 지리멸렬한 협상을 반복했다. 당초 여야는 세월호특별법을 7월 중순까지 마련하려 했으나, 지난해 11월 7일에서야 정부조직법·유병언법 등과 패키지로 묶어 국회에서 최종 통과시켰다.
세월호 정쟁으로 올해 국회는 본분인 입법 활동이 낙제점에 가까워 ‘식물 국회’란 오명을 써야 했다. 5월 초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후 여야가 유일하게 처리한 안건은 세월호 국정조사 하나였다. 여야는 5월 2일 이후 9월 30일 본회의 전까지 세월호특별법은 물론 ‘법안 처리 0건’의 진기록(?)을 세웠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 들어 12월30일까지 접수된 법안은 모두 1만2737건으로, 올해 마지막 본회의인 29일 통과된 123건을 더해도 처리 법안은 3451건으로 법안 처리율은 27%에 그쳤다. 발의된 법안 10건 중 7건은 미처리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거듭된 식물 국회 논란이 이어지자 국민들은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국회도 적용해야 한다며 ‘불출석 국회의원 세비 반납’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연말 뒤흔든 ‘비선실세 국정개입’ 파문·진보당 해산 결정
세월호특별법 제정으로 안정화에 접어든듯 보였던 연말 정국은 청와대의 정윤회씨 동향 문건 유출로 불거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또다시 폭풍이 몰아쳤다.
통상 집권 말기에 불거졌던 권력층의 비선 암투가 집권 2년차에 불거지면서 청와대와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야당은 ‘정윤회 게이트’‘국정농단 사건’이라며 총공세를 펼치고 나섰다. 검찰은 박관천 경정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건을 일단락하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은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후 처음으로 30%대까지 하락하면서 벌써부터 ‘레임덕’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구랍 1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 심판청구 사건에 대해 ‘8(인용) 대 1(기각)’의 압도적 다수로 통합진보당(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의 요지는 이석기 의원 의원의 구속을 부른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등의 활동과 목적 등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고 북한을 추종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진보당은 지난 2011년 12월 창당 이후 3년여 만에 강제로 공중분해 됐다. 비례대표, 지역구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기초의원들까지 모두 의원직이 상실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새누리당은 헌재의 판결을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며 쌍수를 들어 반겼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야권은 정당 해산은 헌재가 아닌 국민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며 “민주주의 기초인 정당 자유가 훼손된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국민의 63%가 이번 해산 결정에 찬성 여론(중앙일보)을 보인 것에 대해 “국민은 헌재 결정이 민주주의를 죽인 것이 아니라, 종북이 진보를 죽였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진보 진영은 ‘종북 진보’의 늪에서 벗어나 민생 진보, 민주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 새해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기점 ‘생활정치’ 응답해야
여야는 세월호 협상과정과 법안 처리율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했지만, 총 375조 4000억원 규모의 새해 정부 예산을 법정시한 내 처리해냈다.
일명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조항인 예산안 자동부의 조항이 처음 적용되면서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예산안이 헌법이 정한 법정시한 내에 처리된 것이다.
그간 몸싸움은 종적을 감췄고 말싸움도 줄어든 가운데, 연말 벼락치기하듯 심사를 거쳐 해를 넘겨 처리되는 구태를 벗어난 것이다. 이와 더불여 연말 임시국회가 정상화돼‘부동산 3법’을 비롯한 128개 법안 처리 성과를 낸 것도 모처럼 ‘연말이 있는 국회’를 일궈냈다.
여야가 예산안을 제때 처리한 것을 기점으로, 을미년 새해에는 민생을 위한 ‘생활정치’란 국민적 요구에 정치권이 적극 응답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유용화 정치평론가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경제성장 제일주의, 개발 제일주의에 매몰됐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정치권은 세월호 사건을 잘 수습함과 동시에 경제민주화, 민생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도 정윤회 논란 등을 해소하고 국정 운영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꾸준히 제기된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지록위마(指鹿爲馬)’을 언급하며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민이 정치권을 얼마나 불신하는 지가 다시 드러났었다“며 “정치권은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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