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정동영 상임고문이 11일 탈당을 선언하면서 야권 권력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정 고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랜 고민 끝에 당을 떠나기로 했다”며 “현재의 새정치연합에선 정권교체의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2007년 대선 후보이자 당의 진보 노선을 이끌었던 정 고문의 ‘제3지대 창당’ 선언으로 범야권은 ‘야권 중통합’(민주당+시민통합당+한국노총)과 ‘진보 통합’(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이 활발했던 2012년 초에 버금가는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특히 정 고문이 합류를 천명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국민모임)이 오는 4·29 보궐선거에서 독자 후보를 내기로 하면서 범야권의 내부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등이 주축을 이룬 ‘국민모임’에는 민주당 최규식·김성호·임종인, 창조한국당 유원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전 의원 등이 합류키로 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인 4·29 보선은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국민모임’의 제3지대 신당 창당이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2·8 전국대의원대회(전대) 국면과 맞물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 상반기 노선과 이념을 둘러싼 범야권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 예견된 鄭 탈당, 범야권 강력한 노선 투쟁 예고
정 고문의 탈당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어 출마한 17대 대선에서 참패한 데다 2009년 4월 탈당, 2010년 2월 복당 등을 거치면서 한때 ‘조직의 정동영’으로 불렸던 그의 조직은 한없이 무너졌다.
열린우리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정치적 선택으로 친노(親盧·친노무현)그룹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정 고문은 2010년 10·3 전대를 앞두고 ‘담대한 진보’를 표방하며 복귀를 시도했으나, 당 대표 탈환에 실패했다.
이후 2012년 대선 출마 포기를 시작으로 재보선 때마다 출마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민주통합당 창당 이후 당 주류로 부상한 친노계는 정 고문을 외면했다. 당 안팎에선 ‘정동영 시대도 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안철수 현상’이 정치권을 강타, ‘노동’과 ‘보편적 복지’ 등 진보 노선을 앞세운 정 고문의 정치행보는 ‘낡은 정치’로 치부됐다. 정 고문이 ‘세대·세력·시대’ 교체의 대상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을 안은 새정치연합이 정치적 변곡점마다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 간 갈등에 휩싸이면서 구체제의 표상으로 전락하자 진보진영 안팎에서 제3지대 창당의 당위성이 흘러나왔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진보정당의 한 축이 없어진 점도 진보정당 창당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정 고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의 대표적 인사들이 참여한 ‘국민모임’이 지향하는 합리적 진보 정치, 평화생태복지국가의 대의에 동의한다”며 “새정치연합과 진보정당들을 넘어서 새로운 큰길만이 정권교체를 위한 가장 확실한 길로, 제 정치 인생의 마지막 봉사를 이 길에서 찾겠다”고 밝혔다. 중도개혁 노선을 지향하는 새정치연합과의 치열한 노선 투쟁을 예고한 대목이다.
◆ 제3지대 성공 분기점은 ‘4월 보선’…분열 원흉 되나
문제는 제3지대 정당의 성공 가능성이다. 1987년 양김(兩金,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정권교체에 실패한 이후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 모두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야권 신당이 총선 등 선거지형을 뒤흔든 예는 1985년 총선 때 신한민주당의 출현밖에 없다. 당시 신한당에는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라는 두 거목이 있었다는 것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당시 양김에게는 현재의 정 고문이 가지고 있지 않던 △대중성 △조직력이 있었다.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안고 영남은 YS, 호남은 DJ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정 고문은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존재감도 조직력도 미약하다. 실제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1일 제외)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야의 차기 대권 지지도(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P)에서 정 고문은 9위 안에 들지 못했다. 야권 대상으로만 한 조사에서 4.0%로 6위에 올랐을 뿐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이 19.7%로 1위를 기록했고 △박원순 서울시장(16.4%) △새정치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8.9%)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8.4%) △안희정 충남지사(6.1%) 등의 순이었다.
특히 중도가 아닌 노동 등 ‘진보’ 노선으로 지지를 받은 제3당의 전례가 없다는 점도 ‘정동영 신당’ 성공의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정 고문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가 1987년 양김 분열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 당권 주자인 박지원 의원이 이날 “(야권이) 통합 단결해서 승리의 길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 까닭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정동영 신당’의 성공 가능성과 관련, “현역 국회의원의 합류가 쉽지 않고, 4월 보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을 만들지도 의문”이라며 “당장 지지도가 올라간다고 해서 실제 선거에서 지지로 연결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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