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보다 일주일 늦게 시청자와 만난 SBS 월화드라마 '펀치'(극본 박경수·연출 이명수)는 6.3%의 시청률로 시작했다. 이후 열한 번째 방송까지 단 한 차례도 하락하지 않고 상승하더니 급기야는 12.3%라는 최고 시청률을 만들어내며 '힐러'를 추월했다.
'힐러'의 송지나 작가와 '펀치'의 박경수 작가를 객관적으로 보자면 스펙 면에서는 송지나 작가의 압승이다. 물론 박경수 작가가 '태왕사신기'(2007), '추적자'(2012), '황금의 제국'(2013) 등 굵직한 작품을 집필한 '믿고 보는 작가'라지만, '호랑이 선생님'(1981), '여명의 눈동자'(1991), '모래시계'(1995), '카이스트'(1999) 등을 내놓으며 대한민국 방송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송지나 작가와 비견되기엔 아직 이르다. 연차로 보나 작품 수로 보나 송지나 작가의 압승이다.
'신의'를 끝내고 숨 고르기를 해온 송지나 작가가 2년 만에 들고 온 작품 '힐러'는 그런 의미에서 방송가 안팎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카이스트'에서 송지나 작가의 보조 작가로 일했던 박경수 작가가 '펀치'로 사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식은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 궁금증을 더하는 대목. 과연 누가 승기를 잡을 것인가.
'펀치'가 먼저 출발한 '힐러'를 밀어내고 월화극 왕좌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출연 배우의 연기력이다. 악랄한 욕망주의자 이태준과 복수를 꿈꾸는 시한부 박정환이 그리는 전쟁터 같은 치열한 정치 세계, 그 안에서 피 튀는 혈투를 벌이는 조재현과 김래원의 연기가 안방극장을 압도하기 때문.
'펀치'에서 조재현과 최명길이 김래원과 김아중, 온주완을 이끌며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면 '힐러'에서는 그것을 유지태에게 기대할 수 있다. 또 '펀치'에서 김래원이 강한 흡입력으로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것처럼 '힐러'에서는 지창욱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펀치'와 '힐러'의 대결은 김아중과 박민영이라는 여배우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진다.
그러나 시청자는 '젠틀맨' 유지태보다는 '연기파' 조재현을, '대세' 지창욱보다 '검증된 배우' 김래원을 선택했다. '힐러'의 뒷심이 부족한 것은 '펀치'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흡입력 약한 배우들의 탓일게다. 유지태와 지창욱이 영화 '마이 라띠마'와 드라마 '기황후'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한들, 조재현과 김래원이 한 화면에서 동시에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아우라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힐러'와 '펀치'의 안방 대결, 아직 종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시청자는 송지나 작가의 필력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먼저 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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