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주도의 글로벌 경제체제에 본격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4억 인구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 중국과의 FTA를 통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유리한 위치도 선점하게 됐다.
정부는 올해도 한·중·일 FTA 등 다자간 지역통합 확대에 통상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경제영토를 확대하겠다는 'FTA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무역지대(FTAAP) 구축을 골자로 하고 있는 중국의 ‘베이징 로드맵’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정부가 설정한 FTA 로드맵이 체결건수와 경제영토 확장 등 외형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실익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시장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단순농업 등 중국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낮거나 저부가가치 업종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과 대응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 동북아시아 지역의 린치핀 역할…실질 GDP 1.25% 경제효과 예고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FTA 체결로 미국에 이어 세계 3대 경제권과의 FTA 네트워크를 완성시켰다. 이에 따른 경제영토 확보 순위도 칠레(85.1%), 페루(78%)에 이어 세계 3위(73.2%)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한·중 FTA를 통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제공동체 구축에 핵심으로 급부상하게 될 전망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RCEP, 한·중·일 FTA 등 메가 FTA의 린치핀(핵심축)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수출액의 26%, 수입액의 16%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수입국에 해당한다. 양국의 지난해 교역규모는 2300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무역흑자는 63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수출액의 11%, 수입액의 8%를 차지하는 미국과 비교해도 커다란 수치다. 즉, 중국과의 FTA 체결이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 GDP는 한·중 FTA 발효 5년 후 0.95∼1.25%, 10년 후에는 2.28∼3.04% 증가 효과가 발생한다. 고용도 각각 23만 3000명, 32만 5000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전 품목에 걸쳐 관세율이 50% 감축되면 연간 54억 4000만 달러(약 6조원)의 관세를 절감할 수 있으며, 전체 GDP는 1.1% 증가할 것이라는 게 연구원의 분석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투자 확대도 예상되고 있다. 한·중 FTA를 통해 부품 소재 및 의료·바이오, 문화 콘텐츠, 패션·화장품, 식품 등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한류 효과를 활용한 전략적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무역업계가 전망한 한·중 FTA’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 수출입 업체 898개사 중 21.6%가 한·중 FTA 이후 중국에 대한 기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 중기 대중국 경쟁력 확보전략 모호
정부는 한·중 FTA 협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축산물 중 60%(수입액 기준)를 관세철폐(일정 기간 후 무관세화)에서 제외했고, 이 중 절반에 달하는 30%를 양허 제외 품목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한·중 FTA의 양허 제외 대상 농축수산물은 548개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이미 체결한 미국 16개, EU 41개, 호주 158개, 캐나다 211개 등 이들 국가의 양허 제외 수치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당장 관세 철폐에선 제외됐더라도 향후 10∼20년에 걸쳐 관세를 감축·철폐해야 하는 품목 등은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이 필요하다.
최근 중국이 소비재 중심 무역에서 제조업·서비스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향후 관세 철폐로 중국 산업의 역침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을 포함한 대다수 기업들의 대중국 경쟁력 확보 전략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 커다란 리스크로 남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제조업체 500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17%는 한·중 FTA 발효에 따른 대비책이 아직 없다고 답했다.
한·중 FTA가 한·미 FTA를 비롯한 기존 다른 FTA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소기업과 소상공인이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산업 구조가 한국과 유사해 중소기업이 경쟁해야 할 분야가 다른 FTA 체결국보다 폭넓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과 중국은 모두 제조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의 산업 구조는 제조업보다는 유통업과 서비스업 중심이어서 한국과 같은 제품을 생산해 경쟁하는 사례가 중국보다 적은 편이다.
또 중국 현지에 탄탄하게 네트워크를 갖춘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국제화 경험, 마케팅 정보, 판매 전략, 전문 인력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품질과 기술력을 높이거나 대체 시장을 개척해 FTA 대응책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책을 세밀하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수출 중기 위협하는 무역장벽 여전히 높아
한·중 FTA 발효로 10년 내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의 비중은 한국 71.3%, 중국 79.2% 수준이다. 이는 한·미 FTA(한국 100%, 미국 97.4%), 한·EU FTA(한국 99.5%, EU는 98.1%) 등 그간 체결한 나라와 비교했을 때 역대 최저 개방 수위에 해당한다.
특히 농·축·수산물의 경우 품목 수 기준 70%, 수입액 기준 40%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개방된다. 정부는 전체 수입액 기준 60%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30%를 양허 제외하면서 농수산축산물 시장을 지키는 데 주력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세철폐 이면에는 기술규제를 강화하는 등 보이지 않는 무역기술장벽(TBT)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TBT는 특정 국가가 자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차별적인 기술규정이나 표준·인증 등을 적용해 국가 간 교역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즉, 각국 정부가 자국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 부과 외의 각종 방법으로 외국 생산품 수입을 억제하는 신(新)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 5년간 미국, 중국, EU, 브라질 등 주요 교역국들의 세계무역기구(WTO) TBT 통보문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사우디아라비아가 214건으로 TBT 통보건이 가장 많았고, 미국 103건, EU 9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중국의 TBT 통보문 수는 지난 2009년 201건에서 2013년 90건으로 줄면서 표면적인 무역장벽은 완화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한·중 FTA 발효로 우리나라가 관세 없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늘어나게 되면서 피해를 보는 기업 수 역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경우 높은 기술무역장벽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WTO의 TBT 통보문 253건 중 152건이 중소기업에 속해 있을 정도로 이들의 해외기술 규제에 대한 분석 대응은 취약한 실정이다.
또 중국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중국강제인증제도(CCC)에도 수출 기업들이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강제인증제도는 중국 내에서 유통되거나 중국으로 수입되는 제품 중 CCC 대상 품목은 반드시 CCC 마크를 부착해야 하며 그러지 않은 제품은 판매 및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를 어기게 될 경우에는 중국 법을 적용해 행정처벌 및 형사책임을 물리게 된다. CCC의 까다로운 인증제도와 획득 절차 등 정보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아울러 중국은 내년 5월부터 강제표준의 시행도 앞두고 있어 비관세장벽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전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민간 통상전문가는 “까다로운 통관이나 검역, 인증·허가제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관세장벽들을 걷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면서 “한·중 양국 간 FTA 시행을 앞두고 비관세장벽에 대한 꼼꼼한 사전점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주먹구구식 경제영토 확장의 위험…비교우위 부문의 경제적 효율성 제고 필요
정부는 올해 통상정책의 핵심으로 중국과의 FTA를 기반으로 한 다자간 지역통합 확대로 목표를 세웠다. 통상정책의 주안점을 경제영토 확대에 두고 글로벌 경제체제에 본격 편입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정부가 설정한 FTA 로드맵이 체결건수와 경제영토 확장 등 외형적인 면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적 실익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FTA를 통한 경제적 이익의 원천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 추가적인 시장 접근 기회 확보를 통한 후생 증대에 있다. 장기적으로는 비교우위 부문으로의 특화를 통한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경제적 효율성 제고가 필요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의 FTA 로드맵이 체결건수에 매달린 나머지 FTA를 통한 본질적인 경제적 이익에 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FTA를 통한 '대외 부문에서의 경제성장 동력' 및 '한국산업 전반의 고부가가치화' 확보와는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FTA 선진국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경우 최근 점차 심화되는 국제 산업 경쟁력 약화로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체계적인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이 수반되지 않은 FTA 정책이 결국 멕시코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순히 FTA 체결건수를 극대화한 '경제영토'에 열을 올리는 것이 FTA 선진국들의 산업경쟁력과 경제체력을 강화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은 중국과의 FTA가 멕시코의 사례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교열위에 있는 경제주체인 농업, 중소기업 등의 노동력과 생산요소를 비교우위 부문으로 재배치하는 산업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한·중 FTA의 경우 기존의 한·미 FTA나 한·EU FTA와 달리 저부가가치 단순제조업을 포함한 우리의 비교열위 산업에 미치는 구조조정 압력은 더욱 큰 상황이다.
중국에 대해 비교열위뿐만 아니라 절대열위에 처한 단순제조업 및 저부가가치 농업부문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산업 구조조정 노력을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자동차 등 비교우위 산업의 해외시장 접근기회 확보 효과를 고려한 정책적 전략 병행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특화할 수 있도록 정밀한 산업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FTA를 통한 수출입 상대가격의 변화가 초래하는 산업구조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범정부 차원의 산업 구조조정 정책 추진을 위한 세부전략 도출과 정책재원 마련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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