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붕괴···한국경제, 심장이 식어간다] 낙후된 호남 경제, 산단 위기에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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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2-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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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지역 산업단지 위기에 주민 소비 심리까지 '꽁꽁'

유흥가가 밀집한 전남 광양 광영동 거리. 네온사인이 불을 밝히고 있지만, 정작 오가는 사람이 없어 적막한 모습이다. [사진=이소현 기자]


아주경제 (여수·광양·전주) 정치연·이소현 기자 = “여수서 돈 자랑 하지 말라 하는 말 들어 봤지라. 거 다 옛날 말이여. 요새 여수산단 경기가 안 좋아서 그랑가 다 난리랑께.”

지난 6일 여수엑스포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희태(65·가명)씨는 요즘 여수 지역 경기가 좋지 않다며 걸쭉한 사투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벌교 가서는 주먹자랑, 순천 가서는 인물자랑, 여수 가서는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전남 지역에 전해지는 오래된 풍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때 이런 풍문은 옛말에 불과하다. 1998년 도시 통합을 이룬 여수시는 인구 34만명의 전남 지역 최대의 도시로 기틀을 다졌지만, 지난해 12월 기준 인구수는 29만4459명으로 크게 줄었다.

산업화 시기 석유화학공업단지 개발에 힘입어 전남 지역 내에서도 소득 수준이 양호한 곳으로 꼽히는 여수에도 불황의 여파가 서민 경제가 줄줄이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수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여수시청 옆 학동과 여서동 부근 상권은 주말을 앞뒀지만 한산한 모습이었다. 불황에 법인카드 지갑을 닫아버린 산단 직원들의 회식 횟수가 자연스레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지역 상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서정수(35·가명)씨는 “점심시간 시청 공무원들이 와서 잠깐 바쁠 뿐”이라며 “저녁시간 회식 손님이 줄면서 장사가 안돼 일하는 직원을 5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여수산단은 굴뚝의 흰 연기와 불빛이 24시간 멈추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고용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영은 여수시청 지역경제과 과장은 “지역 경기가 활성화되려면 결국 고용창출이 많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여수산단은 300여 개 가까운 공장들이 있지만, 첨단자동화 시설 위주여서 고용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간 불황으로 여기저기서 어렵다는 얘기는 수년 전부터 계속됐지만,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는 게 광양시·기업 관계자·소상공인들의 한목소리다.

광양 지역 상권 역시 철강산업 침체에 된서리를 맞았다. 광양제철소 직원들의 근무 형태가 4조2교대로 운영되면서 주변 상권은 썰렁한 모습마저 들었다. 직원들이 퇴근 후 회포를 풀었던 광영동 유흥가는 네온사인만 번쩍거릴 뿐 거리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이 적막했다.

광영동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홍승영(54·가명)씨는 “교대근무 변경 전인 4조3교대 시절에는 퇴근 시간이면 술집에 제철소 직원들로 바글바글했다”며 “근무형태가 하루 8시간 근무에서 12시간 근무로 바뀌면서 직원들은 회식하기도 부담스러워 사람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광양시 및 상공인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4조3교대로 근무형태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4조2교대로 바뀌었지만, 연간 총 근로시간은 동일하게 유지되면서 휴무일수가 80일 이상 증가했다.

광영동과 중마동 주변에 형성된 원룸촌과 모텔촌도 광양제철소 내 철분말, 열연 공장 증설 설비투자가 지난해 마무리되면서 건설 노동자들이 떠나자 텅텅 비게 됐다.
 

전주산업단지가 위치한 전주 팔복동 주변 상가. '창고 임대'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사진=정치연 기자]


전북 최대의 도시 전주도 지역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악화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전북지역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경제 상황에 대한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해 12월 기준 101을 기록하며 2013년 5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실제 지난 주말 찾은 전주 서신동은 백화점이 위치해 한때 전북 최고의 상권으로 불렸지만, 현재 주변 상가 곳곳이 공실로 비워져 싸늘한 느낌마저 들었다.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군산·완주 등 타 지역 쇼핑객이 감소한 탓이다.

서신동 백화점 앞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선아(36·가명)씨는 “지난해 말부터 백화점 손님이 뚝 떨어지면서 카페를 찾는 손님도 크게 줄었다”며 “주변 상가에서 수년째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도 매출 악화에 가게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정병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책임교수는 “글로벌 경기 불황과 내수 침체의 여파로 전북권 산단이 침체되면서 전북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며 “산단 위기의 여파가 지역 소상공인들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부메랑 효과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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