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은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성장 곡선이) 완만하게 가다가 갑자기 점프하는 것, 그것은 혁신에서 비롯된다. 창조경제는 어려운 게 아니다. 바로 아이디어로 돈 버는 경제다. 지금은 R&D(연구·개발) 시대가 아니냐. ‘기술·자본·인간’, 이 세 가지에 투자해야 한다. 품질과 가격경쟁력만 입증되면 (기업의 상품은) 잘 팔려나간다.”
새누리당 소속 정희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전한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한국 경제의 위기 타개책이다.
집권여당의 경제통이자 3선 의원, 그리고 세법전쟁의 한가운데 선 정 위원장. 그는 ‘신 3저’(저성장·저물가·엔저)의 역습으로 경기 침체와 극심한 수요 부진의 도돌이표가 무한 반복되는 길 잃은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그래서 찾아갔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기재위원장실에서 가진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한시적으로 법인세율을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여권 내 다수 의원이 찬성하는 연말정산 소급적용에 대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집권여당 소속 의원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셈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까닭에 정 위원장은 요즘 ‘여당 내 야당’로 불리기도 한다. 소리 없이 강한 리더십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이날 △박근혜 정부 2년간의 경제 평가 △경기 침체 탈출 해법 △법인세 인상과 연말정산 소급적용 △국가부채 △복지와 성장 등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朴정부, 실질적 경제성과는 물음표”
그의 경제위기 해법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묻지마식’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장하지도, 그렇다고 ‘보편적 복지’만이 길이라고 답하지도 않았다.
기업은 투자를 통해 ‘혁신’에 매진하고, 정부는 한국 경제 특유의 구조적 문제 해소에 나선다. 또한 경제주체인 정부·기업·가계 모두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경제의 두 축인 가계의 ‘효용극대화’와 기업의 ‘이윤극대화’, 공공경제인 정부의 ‘사회후생극대화’ 성격을 모두 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 위원장이 한시적인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한 까닭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출신인 정 위원장은 명목세율 인상 없이 실질적으로 부가세(surtax)를 올리는 ‘묘수’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13월의 악몽’으로 둔갑한 연말정산의 소급적용을 반대한 이유도 이런 가치철학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2년간의 경제정책 평가에 대해 “나름대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돈이 풀렸느냐는 다른 (차원의) 물음표”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를 비롯해 기금 등을 푸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내놨다. 당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 최경환 경제팀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결과는 미약했다. 반복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하향 수정, 대외경제의 불확실성, 늪에 빠진 내수경제, 1000조원을 넘어선 부채, 원화에 대한 상대적 고평가, 고령화·가계부채·노후 불안 등 먹구름 일색인 장기성장의 암초…. 그야말로 한국 경제는 난파선 직전이다.
특히 ‘신 3저’(저성장·저물가·엔저)의 역습으로 ‘경기 침체→극심한 수요 부진’ 도돌이표 현상이 반복되면서 일본의 ‘헤이세이’ 공황에 버금가는 한국형 장기 불황이 엄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자 최경환팀은 ‘구조개혁’으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기조를 선회했다. 정부가 5대 구조개혁인 ‘공공부문·서비스 분야·금융·노동·금융’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돈을 푸는 방법으로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다른 간접적인 방법으로 했다”며 “그런 점은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국가재정법이 추경 편성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만큼 ‘철저한 검토’를 통해 세밀하게 정책수립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인도 ‘맨파워’, 韓보다 낫다”
이 지점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저하된 상황에서 과연 어디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느냐의 문제다.
정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정부의 투자환경 조성 △기업의 혁신 및 고통분담 등을 강조하며 ‘한국형 장기불황’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국내 1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쌓아둔 금액)이 2009년 이후 매년 80%씩 늘면서 지난해 1분기 기준으로 515조를 넘었다는 조사도 있지 않으냐”고. 참여정부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던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문제를 ‘일반적인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정 위원장은 “기업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투자한다. 그게 기업의 생리다.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다 들어오게 돼 있다”며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규제완화 △인프라 구축 등을 꼽았다.
특히 정 위원장은 인프라 구축 부분에서 “물류비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보다는 인적자원 등 소프트웨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우리가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실리콘밸리에는 중국과 인도 IT 전문가들이 더 많다”며 “인도 IT 공과대학은 세계적인 잠재력을 지닌 두뇌집단이다. 세계적인 IT 기업이 인도로 가는 이유다. (하루빨리) 숙련된 근로자 육성 등 맨파워 육성에 투자해야 하는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업혁신과 관련해 “혁신을 하면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 과연 우리가 새로운 혁신을 연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잘 해왔느냐. 그것도 물음표”라며 “일시적으로 하다가 안 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과제인 창조경제를 거론하며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경제도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마찬가지”라며 “이 때문에 ‘지속 가능한’ 혁신이 중요하다. 그간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성장동력을 위해 노력했느냐. 산업과 농업, 건설 등 각 분야가 유기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잘했느냐. 그것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인세 한시적 인상, 기업부담 없다”
인터뷰 중반부에 접어들자 정 위원장은 연초정국 최대 화두인 ‘법인세 인상’과 ‘연말정산 소급적용’ 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묘책을 제시했다.
먼저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선 “한시적으로 (최고구간) 법인세율을 2~3년간만 1%포인트 인상하는 방안도 있다”며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가 이런 방식이다. 명목세율의 변동은 없기 때문에 기업에도 부담이 없다”고 아이디어를 내놨다.
정 위원장은 “법인세를 올리는 방법은 단순히 22%를 25%로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명목세율이 높아지지 않느냐”며 “그렇게 하지 말고, 부가세 형태로 22%의 5% 같으면, 전체 1.1%포인트가 인상되는 것이다. 명목세율은 올라가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부가세가 올라가는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담뱃세 인상으로 (많은 국민들이) 실질적 증세가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이 아니냐”라며 “형평성 차원에서 기업도 고통분담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화두를 던진 것이다. 한시적 인상이기 때문에 다시 원위치 된다. 기업에는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재정의 숨통이 트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부채 1000조원’ 시대에 대해선 “부채는 미래세대에 대한 ‘빚’이다. 저출산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채 증가는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채는 동전의 양면이 아니냐. 부채 대다수가 투자 명목으로 빌린 것이라면, 꼭 부정적인 신호는 아니지 않으냐”라고 물었다. 정 위원장은 “어떤 나라도 국가부채를 많이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며 “어쩌다 보니까 할 수 없이 부채를 질 수밖에 없지….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 복원력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연말정산 소급적용? 법치주의 훼손”
정 위원장은 연말정산 추가 공제분에 대한 소급적용 논란과 관련, “국민적 반발이 있다고 소급적용이라는 나쁜 선례를 만들면, 누가 세금을 내려고 하겠느냐, 이는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며 “(만일 소급적용이 이뤄진다면) 제2·제3의 소급적용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당·정은 ‘4월 소득세법 개정안 처리→5월 소급적용→6월 추가환급’ 등을 위한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추가 공제 이후 공제를 받지 못한 국민들이 또 불만을 드러낼 것”이라며 “소급공제와 세액공제 부분을 재설계한 뒤 올해 손해 본 것을 몇 년에 걸쳐서 다 보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도 귀속분 소급적용 대신 2015년도 귀속분부터 공제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는 △자녀양육비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등 7개 특별공제 항목의 공제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경한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해선 “부분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흐름은 맞는데, 세부적인 디자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통상적으로 교육비와 의료비 등 필요경비는 소득공제를 한다. (세액공제로의 변경으로) 솔직히 세금을 더 거둔 것이지”라고 말한 뒤 “이번 연말정산 공제 방식 변경으로 세수가 9300억원 더 걷히는데, 소급적용 시 5000∼6000억원을 되돌려준다. 모이면 큰돈이지만, 1/n 하면 푼돈이다. 돌려받은 사람이 만족할까”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득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 위원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복지는 해야죠. 다만 재정여건 하에서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며 “재정규모가 복지 의무지출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복지 전달체계, 복지지출 구조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기재위 현안과 정치 현안에 대해 하나씩 물었다. 정 위원장은 한국투자공사(KIC) 폐지와 관련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는 보편적 형태가 아니다.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것에 대해선 “실현 불가능한 법”이라며 “이론적으로는 좋다고 해도 우리 선거풍토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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