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후 30년의 내공을 쌓은 연기계의 숨은 고수 김정석을 지난달 25일 서울 서교동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배우로서 첫 주연을 맡은 김정석은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주연까지 생각도 못했던, 잊지 못할 작품이죠. 정말 소중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영화 ‘러시안 소설’ 속 4개의 소설 중 하나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주연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전 영화인 ‘배우는 배우다’ 쫑파티 때 ‘조류인간’에 출연해 주실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고’했죠. 그랬더니 신연식 감독이 대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감사했죠.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
13~14년 동안 인연을 맺다보니 큰 설명이 필요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1년 동안 독립영화 7편을 소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연기에 대한 공부를 이어 갔다. 작품복이 있어 많은 출연작들이 영화제에 출품됐다. 신연식 감독의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 이수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공주’, 이무영 감독이 연출한 ‘한강 블루스’ 등은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됐다.
수많은 감독들과 인연을 맺은 그는 신연식 감독에 대해서는 특별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조류인간’은 시나리오를 나중에 받은 케이스”라면서 “작품에 대한 신뢰도가 있었다. 신연식 감독의 작품은 보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평소에는 작품성 다음에 배역을 본다”고 말했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독특한 소재라고 생각했죠. 신연식 감독님의 독특한 세계관이 반영됐다고나 할까요? 신선하고 독특했어요. 후회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3회차까지는 고전을 했어요. 첫 주연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죠. 감독님하고 사무실에서 10시간동안 작품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해서요. 원래 대사량이 많았는데, 암만 생각해도 15년 동안 혼자 다니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캐릭터를 구축할 때 인간 내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어요. 그런데 신연식 감독님이 ‘그냥 편하게 형(김정석)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그렇게 배역을 정하더라고요. 배우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다고나 할까요?”
김정석은 작가 정석 역에 몰입하기 위해 스태프들과 말을 잘 섞지 않았다. 신연식 감독의 엄명이 떨어졌기 때문. 농담도 하지 않고 혼자 밥을 먹고 홀로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등산도 혼자 했다.
역할의 롤모델로는 김훈 작가를 꼽았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발간된 ‘남한산성’ 쇼케이스에도 참석한 그는 김훈 작가와 함께 남한산성을 돌며 담소를 나눈 경험이 있다. 그때 김훈 작가의 눈빛을 잊지 못해 이번 역할에 참고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역점을 뒀다.
매 작품마다 확실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는 그가 어떤 계기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어머니께서 생일 선물로 ‘국도극장’에 데려가 주셨어요. 처음 본 영화가 ‘메리포핀스’(1979)였죠. 만화가 들어간 합성영화였는데 당시 제 또래들에게는 인기가 많았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입이 됐죠. 눈물도 흘렸고요.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반대가 컸다. 소위 ‘딴따라’ 직업이라고 불렸던 시대였으니 당연했겠지만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명지중학교를 졸업하고 안양예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의 첫 영화인 ‘길소뜸’ 출연 결정은 안양예고에서 이루어졌다.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겨울여자’ 등 1970년대 한국 영화사를 빛냈던 수많은 작품을 배출한 화천공사의 이완호 부장이 수업시간에 학교를 방문, 김정석을 찾았다. 곧바로 임권택 감독을 만나 머리를 깎고 영화에 출연했다. 거장 임권택 감독에게 “바로 이놈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데뷔했다. 그는 “지금도 어떤 감독님은 ‘그때 연기가 가장 좋았다’고 얘기할 정도로 연기는 알면 알수록 힘들었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좌절도 했고 3번이나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다.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연극은 ‘돈’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이었다. 힘든 시기에 그를 잡아준 친구가 허진.
그렇게 다시 시작한 연기이니 그만둘 수 없단다. 작품이 없을 때는 우울하지만 현장에만 가면 피곤함이 사라진다. 연기가 아니었다면 살아갈 힘도 얻지 못했을 거라는 말에서 ‘천상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대학로 연극과 공연을 보러다니며 오달수, 유승목, 손종학, 이달영 등 연극배우 출신 동료들과 서로 조언도 주고 받고 최홍일, 주진모, 홍파 등 많은 선배들을 모시며 살고 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는 말처럼 첫 주연을 맡은 배우 김정석의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펼쳐질 연기인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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