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 '단색화로 봄날' 박서보 화백 "묘법은 금욕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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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0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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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부터 노화랑서 '박서보의 묘법:에스키스-드로잉'전 전시

[2000년도부터 스님처럼 깎은 민머리와 고운 피부를 자랑하는 박서보 화백은 깨끗하게 늙어가고 있다고 주변에서 말한다며 작품처럼 나도 비워내니 나도 단색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박서보 '묘법'이 '마법'을 부리고있다.

지난 40년간 잠잠하던 '묘법'은 단색화의 부활을 주도하며 국내외 미술시장을 흔들고 있다. 

 작품값도 3~4배 뛰어올랐다. 국내 경매사에서 인기를 증명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서보의 ‘묘법 No. 47-74’(37.7 x 45 cm(8호)가 낮은 추정가 400만원의 약 18배에 달하는 7296만원에 팔렸다. K옥션에서 '묘법 No.211-85'은 추정가 4배나 뛰어넘어 해외 응찰고객에게 2억8300만원에, 또 다른 '묘법 No.071227'은 낮은 추정가의 2배 가격인 1억1358만원에 팔려나갔다.

  '살아있는 현대미술'로 불리는 팔순이 넘은 작가는 다시 봄날이다.

 지난해 11월 파리 페로탱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성공리에 열었다. 페로탱은 세계에서 '비싼 작가'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등을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화랑이다. 올해도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12일 세계미술품경매사 소더비의 단색화전에 이어 15일부터 여는 아트바젤 홍콩에 출품되고 이어 5월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이 예정돼있다. 

 "단색화가 왜 뜨느냐고?. 내가 예전에 서양의 미니멀리스트를 철저히 공격했던적이 있다. 네들은 철없는 애들이라고…. 미니멀리즘은 개념만 있지 눈감고 손으로 꾹 찌르면 개념이 손가락에 부딪친다. 하지만 단색화는 깊이가 다르다."

  박서보화백(84)의 '달변 카리스마'는 늙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내가 1등’ ‘아시아 최고 작가’라는 하늘을 찌르는 변함없는 자신감은 여전했다. 

 드로잉전을 앞두고 만난 박 화백은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화려했던 옛날 기억력이 강력하게 재생됐다. 단색화와 묘법, 박서보의 화법을 자연관에 연결시키며 "내 작품처럼 욕망을 비워내니 깨끗하게 늙어가고 있다고 주변에서 말한다"며 활짝 웃었다.

 "내가 깜박 깜박할수도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지적도 하라"면서도 30~40년전 해외에서 열었던 전시와 유명 비평가들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내며 말을 이었다. 그는 7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졌었다. 

 단색화. 서양추상화인 모노크롬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때 단색화는 모노크롬사조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양의 모노크롬은 다색주의에 대한 안티로 나타난 것이지만 단색화는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자연을 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ㅇ입니다”

 
박 화백은“단색화는 억제돼 몸부림치는 자기 절제의 결과이기 때문에 색이 없는 것이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어서 정신적 깊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묘법'은 "생활의 미학이자 자연(치유)의 예술"이라고도 강조했다. "이조의 도자기는 희끄무레하지 않는가. 유약의 순도 100%를 못해서가 아니라 희다는 개념이 드러나니까 유약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거무스레한 색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렸을때 시골에서 컸다. 어머니가 불을 때서 밥을 지으면 검정 연기가 올라가 천정이고 추녀에 꺼매졌다. 검은게 아니라 꺼멓다. 바로 그 색이다. 내 검정은 아궁이의 그 거무스레한 느낌을 낸 것이다."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있는 말이지만 만약 외국어로 번역로 하자면 쉽지않은 말이다. 박 화백옆에 있던 미술가 평론가 김용대(전 대구미술관장)씨는 "미니멀리즘이 우유이면 단색화는 곰탕"이라고 부연했다. "미니멀리즘이 재료 (material)자체라면 단색화는 잡고기를 밤새 끓여 기름기를 거둬낸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췄다"며, '몸의 들임'이 차이라고 했다.

 40년만의 부활, 단색화는 시대의 흐름일까, 화상의 요청일까. 

 박 화백은 "화상의 요청은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상업적으로 뜬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조앤 기 미시건주립대 미술사학과 교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조앤기 교수가 나를 포함해 이우환, 권영우, 정상화, 윤형근등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지난 2013년 책을 출판했고, 그 책이 그 해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저서로 상을 받았었요. 이것이 단색화가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된겁니다. 이후 LA브로맨도프 갤러리에서 단색화전을 요청했고, 뉴욕에서 5인전이 열리기도했지요."

 지난 40년간 '사생아'로 살아온 단색화의 독립이었다. 
불과 2년전, 서양의 모노크롬과 일본의 모노하와 비슷해 이 두 사조속에 편입된 듯 애매한 모양세였던 단색화는 'Dansaekhwa'로 영문이름까지 정해졌다.
 

[박서보의 거무스레한 색감의 묘법]

 


 수행같은 작업을 해온 탓일까. 민머리에 맑은 표정과 피부를 자랑하는 그는 승복만 입으면 영락없는 스님 같다.

 '묘법'의 시작도 선방에서였다. 종이와 연필을 들고 절에간 그는 연필을 탁 치면 충격에 의해 방향이 정해지는 그리기에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1967년 어느날이었다. 3살난 둘째아들의 '노트질'하는 행위에서 무릎이 탁 쳐졌다. "아들놈이 한글을 쓰는 연습을 하던 중이었어요. 공책에 그려진 칸에 글씨를 넣으려고 몇번을 하더니 잘 안되니까 연필로 그 칸에 아예 그어버리더라고요. 체념이었겠지요.그걸 보고 아하~했지요"

 우연히 깨달은 '돈오돈수'였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해결책을 얻지 못하던 때였어요. ‘비워야 한다’ ‘체념해야 한다’는 깨달음은 얻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방법론을 모르던 때지요."

 연필로 비슷한 선을 무한히 긋는 ‘묘법(描法)’ 연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에는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은 뒤 연필로 선을 긋고 다시 물감으로 지우고 선을 긋는 행위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지우는 행위의 반복과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이다.

 한때 단색화는 '시대의 저항속에 탄생했다'는 평도 있었다. '저항의 정신'이 담겼을까.

 박 화백은 1983년 일본 교토에서 열렸던 국제종이회의로 기억을 돌렸다.  당시 한 관객이 박서보화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화백의 작품은 철저한 금욕적이다. 자기 억제가 심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것이 그것이 한국의 정치상황과 관련있느냐, 독재성에 대한 항거인가'.

 "정치적인 것은 고려를 해본적은 없지만 반영은 됐을 것"이라는 박 화백은 "아마 시대로부터 받아온 상처들이 내재적으로 풍겨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난 내 그림은 전통적인 삶에 접근한거다라고 했다"면서 (단색화가)정치적인 데모스트레이션(demonstration)의 산물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당시 그 질문속 '금욕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그 말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박 화백은 "내 그림속에서 억제되어서 몸부림치는 것 같은 자기절제가 힘으로서 팽창되어서 나온다는 거지. 아주 잘 표현한 말"이라며 지난 50여년간 도닦듯 그려온 자신의 작품을 함축했다. 

 “그림에서 비운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지지요. 이제 저는 탐욕이나 잡스러운 생각을 저혀 하지 않아요. 어떤 자극적인 얘기에도 흥분하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살아요. 다 해봤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부질없어요”

 '비움의 인생관'이 담긴 박화백의 '묘법'이 속살을 공개한다. 11일부터 '박서보의 묘법:에스키스-드로잉'전을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연다.

 미술평론가 김용대는 "흔히 아이디어 스케치로 이해되지만 박서보의 드로잉은 아이디어 단계를 넘어 그의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주요 작업단계"라며 "이번 ‘에스키스-드로잉’은 그러한 변화와 진폭을 압축한 설계도이며 예민하고 섬세한, 공기층까지 머금은 생동하는 구조"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전시는 31일까지.(02)732-3558

 
[박서보의 묘법 : 에스키스-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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