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뢰'에서 잔인한 연쇄살인자 조강천 역을 열연한 배우 박성웅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 카페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경찰 태수의 여동생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 강천은 처음 보는 경찰서 취조실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제발 시신이 어디 있는지 말해"라는 경찰의 말에 무심하게 "내가 왜?"라고 반문했다. 이성을 잃은 태수의 폭력을 묵묵히 받아내더니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그를 재밌다는 듯 훑어내렸다. 태수가 총구를 겨누자 "내가 죽으면 네 동생 어디 있는지 영원히 모를걸"이라며 이죽거렸다.
영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제작 미인픽쳐스·영화사 진)에서 냉혈한 연쇄살인마 강천을 연기한 배우 박성웅을 만나러 지난 20일 삼청동을 찾았다. "순수해서 더 잔인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더니 태연스레 "너무 무서우면 얼굴 보지 마세요"라고 했다.
박성웅은 이 장면을 연기하며 아들을 생각했다. "최대한 순진하게 웃고 싶었다. 그래야 강천의 잔인함과 태수의 절망감이 극대화 될 테니까. 무슨 생각을 할까 고민하다 일주일 동안 보지 못한 아들을 떠올렸다"며 웃었다.
"강천은 이유가 없어요. 전사가 없어서 더 무서운 인물이죠. 그래서 '1차원적으로 연기하자' 했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건넨 초콜릿을 맛있게 먹고, 취조실이 신기해 여기저기 살펴보고…본능에 충실하게 말이에요. 현장에 빨리 가고 싶었습니다. 준비보다는 현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은 인물이었으니까요."
영화 '살인의뢰'에서 잔인한 연쇄살인자 조강천 역을 열연한 배우 박성웅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 카페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
전라로 펼친 목욕탕 액션 장면은 미소보다 강렬했다. 강철 같은 근육이 장신을 덮었고 핏줄은 쉴새 없이 꿈틀거렸다. 칼에 찔릴 때마다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상대를 난도질했다. 맨몸에 뿌려지는 상대의 피에 즐거운 듯 샐쭉거리면서. "18시간을 찍었다"는 그의 말에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생각보다 빨리 완성됐다'는 의미로 "18시간밖에 안 걸렸느냐"고 되물었다가 큰일 날 뻔했다. 박성웅은 "18시간밖에? 밖에? 멍키스패너 좀 가져와"라고 농을 쳤다.
"제가 설명을 해드릴게요. 18시간을 어떻게 찍었느냐! 자, 일단 빨가벗었어요. 목욕탕 장면이니까 몸에 물을 뿌리고요. 이게 또 마르잖아요. 그러니까 슛 들어갈 때마다 물을 계속 뿌려요. 8월이었는데도 춥더라고요. 그리고 18시간 동안 물을 못 마셔요. 아니지 18시간이 뭐야, 그 전날에도 못 마셨으니까 42시간이죠. 카메라 앵글을 바꿀 때라도 쉬었느냐? 아니죠. 근육이 유지되도록 계속 펌핑을 해야 돼요. 18시간을 그러고 있었던 거예요."
강천은 말이 많지 않은 인물이다. 박성웅은 대사를 대신할 비언어적 측면에 힘을 실었다. 현장 검증에서 비난하는 구경꾼을 "워"하며 놀라게 하거나 울부짖는 유가족을 힐끔 쳐다보는 디테일은 모두 그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역시 악역 전문가"라고 치켜세웠는데 정작 박성웅은 '살인의뢰' 출연 결정을 놓고 깊게 고민했다. 배우로서 이미지가 소모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영화 '살인의뢰'에서 잔인한 연쇄살인자 조강천 역을 열연한 배우 박성웅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모 카페에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
"배우니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강한 캐릭터를 특별히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그런 역할이 주어지고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니까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신세계' 이중구도 그렇게 터진 거고요. 근데 그게 저한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생활 연기하는 게 훨씬 부담감이 없거든요. 힘 빼는 거 있잖아요. 무엇보다 이제 좀 제 아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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