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명문인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박근형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1기로 입학, 연극을 시작했다. 고려대의 여운계와 함께 ‘신예의 등장’이란 언론의 평가를 받으며 주목받았다. 극단 협연, 민중극단에 이어 1963년 KBS 공채탤런트 3기에 합격하며 브라운관을 공략했고 1969년 이성구 감독의 ‘지하실의 7인’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포털사이트 프로필 기준, 특별출연을 빼고 출연한 드라마만 111편, 외에 주연을 맡은 드라마가 14편이다. 영화 출연작은 총 27편, 주연은 50편이다. 50번째 주연작이 바로 ‘장수상회’(감독 강제규·제작 빅픽쳐·CJ엔터테인먼트)다. 지난달 30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박근형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박근형은 ‘장수상회’에서 틈만 나면 버럭하는 까칠한 해병대 출신 노신사 성칠 역을 맡았다. 성칠은 어느날 앞집으로 이사 온 임금님(윤여정) 여사를 보고 삶의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설렘을 느낀다.
“사실 성칠은 동네에서 꼭 보이는,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분들 있죠? 그런 이미지이죠. 제 실제 모습과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역할 창조를 위해 감독과 미리 만나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촬영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꼬장꼬장한 해병대 출신 성칠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자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강 감독도 그렇게 생각했다며 얘기하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제가 그동안 보여왔던 회장 이미지가 보일까봐 그런 것도 있었죠.”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대하는 인물에 따라 투정 비슷한 게 있지 않은가요? 정이 가고 가까이 가고 싶으면 되려 큰소리를 치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연극적으로 표현할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죠. ‘장수상회’는 연극적인 표현에 있어 최적화된 시나리오였어요. 드라마로는 ‘추적자’가 그랬죠. 생각해보니까 나는 연극학도였는데…. 드라마는 순발력이 중요했는데, ‘추적자’에 이어 연극적인 표현을 하니까 진짜 좋더라고요. 과거 연극은 관객과의 거리도 멀지만 음향 시설이 좋지 않아 과장된 연기가 많았었죠. 옛날 명동에 관극하러 갈 때는 조용히 말해도 됐긴 했죠. 영화는 감독 예술이라고 하고, 연극은 배우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은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연극적인 연기를 배제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 시절이 아닌 거죠.”
오랜만에 20대의 기억을 떠올린 박근형은 일부러 화를 내는 부분을 더 키우고 눌러줄 때는 확실히 감정을 억눌렀다. 강제규 감독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칠을 완성했다.
박근형은 “강제규 감독은 거장이지 않느냐”면서 “거장다운 면모가 나왔다. 계획된 콘티를 보면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는 게 있었다. 연습이 많고 테이크는 적은 것도 거장다웠다. 배우들은 연습에서 연기를 맞춘 다음 보충해 1~2번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회상했다.
윤여정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제가 야단 맞는 편이었어요(웃음), 아주 명석하고 영리한 분이시죠.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게 있어요. 다른 배우들은 잘 못하는데 필요한 부분은 감독과 명확하게 선을 긋기도 하고요. 저하고는 눈빛만 봐도 연기를 한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데이트를 할 때 손을 잡고 갈 것이냐, 놓고 갈 것이냐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장수상회’는 노인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어르신들의 ‘고독사’와도 맞물린다.
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인 박근형은 “‘장수상회’를 기점으로 노소청장년이 다 어울릴 수 있는 극들의 붐이 일어나, 핵가족으로 분열된 요즘 대가족 때의 인간관계, 가족의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이 사회의 좋은 바탕이 될 수 있고, 영화가 흥행적인 측면에서 성공하든 아니든 계속 논의가 돼야 할 부분”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노년의 삶은 외로움이 가장 크죠. 성칠은 혼자 떨어져 있다는 것. 외로운 게 제일 컸을 거라 생각해요. 젊은이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나중에 벌어질 수 있어요. 영화를 보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중간에 유언 아닌 유언, 메모장에 ‘내 이름은 김성칠입니다. 제가 죽으면 서랍에 있는 돈으로 장례를 치러주세요’라고 써 놓은 부분은 제 나이대 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얘기를 많이 해줘야하지만 잔소리는 안된다고 봐요. 컴퓨터를 모른다고 억지로 부정할 게 아니라 다가가야죠. 저도 컴퓨터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인터넷 서칭 정도는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운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편이죠. 제 꿈은, 정읍이 고향인데 거기에 조그만 서당 같은 서원을 차려 17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대화하고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에요. 작가나 연출가,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들의 기초 작업을 제가 해주고 싶어요.”
“주로 이론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죠. 자기 생각이 있어 작사, 작곡, 음악을 하는데 리듬은 같다고 생각해요. 이론으로 이해가 가능하면 실험해 보겠죠. 가만히 보니까 연극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 같더라고요. 정극을 골라 하려니 힘이 들겠죠. ‘장수상회’ 홍보가 끝나면 연극 단체들을 골라 소개를 시켜줄까 합니다.”
갑자기 얼굴에 미소를 짓는 박근형. 이유는 손자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연기하는 집안이 될 것 같아요. 고3인 큰 손자가 연기를 배우고 연극학과 진학을 준비 중이에요. 뿌듯하죠. 저는 배우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죠. 아들이 엔터 일을 한다고 했을 때는 반대했는데 손자가 한다니까 좋더라고요(웃음). 크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적성을 찾아가는 게 기분이 좋지요. 아들 때는 배우가 고통스러워 하지 말라고 했던 거죠. 외국에 공부하라고 보내왔더니 갑자기 돌변하니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랬더니 와이프가 당신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격려해주라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내가 고집할 부분이 아닌 것 같았어요. 오히려 신랄한 질문을 하는 건 손자에요(웃음).”
박근형은 연기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어령 선생이 나만의 것을 갖고 하는 게 가장 특별한 것이라고 했다. 그걸 연기에 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편 타당성만 찾으니까 연기가 비슷해진다고 본다. 연기는 특별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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