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4·29 서울 관악을·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 각각 출마한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선거 초반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정 위원장의 서울 관악을 보선 출마로 ‘비(非) 새정치민주연합’ 연대가 고차 방정식으로 격상, 범 진보진영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
진보결집의 큰 줄기인 ‘4자 협의체’(국민모임·정의당·노동당·노동정치연대)가 ‘정동영 출마’라는 돌출 변수로 난항을 예고하자 진보진영 내부에선 연대의 판이 깨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재·보선 최대 격전지인 서울 관악을과 광주 서구을에 호남 비노(비노무현)세력의 양대 축이 나섰지만, 감동 있는 단일화는커녕 물리적 결합도 쉽지 않은 셈이다.
특히 2007년 범 진보진영의 대선후보였던 정 위원장이 전격적인 승부수를 띄우면서 4·29 재·보선이 ‘박근혜(대통령) vs 문재인(새정치민주연합 대표) vs 정동영’의 구도로 흐르자 인물난에 시달리는 소수정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정동영 돌출 변수로 관악을 단일화 셈법 복잡
1일 4자 협의체에 따르면 이들은 전날(31일) 4·29 재·보선 후보 단일화 등을 포함한 선거 전략 논의에 나섰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국민모임·정의당·노동당·노동정치연대 등 각 내부진영의 복잡한 이해관계 탓이다.
애초 국민모임과 노동당은 지난 2월 17일 ‘반(反)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 △진보결집 공동회의 구성 등을 각각 주장했다. 재·보선 이후 본격화할 야권발(發) 정계개편 과정에서 단순한 결합이 아닌 새로운 공동가치의 논의를 위한 테이블을 만들자는 의미였다.
이 과정에서 재·보선 연대 논의를 위한 4자 협의체가 구성됐다. 이 중 유일한 원내정당인 정의당은 △서울 관악을 이동영 △인천 서구·강화을 박종현 △광주 서구을 강은미 후보 등을 내세웠고, 노동당은 나경채 대표가 출격하면서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진보진영 내부에선 ‘관악을 나경채’, 서구을 ‘강은미’ 후보로 1차 합의를 이끌어낸 뒤 무소속인 천정배 후보와 막판 단일화 협상에 나선다는 시나리오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동영 변수’로 4자 협의체가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재·보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의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정 위원장이 서울 관악을 보선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면서 4자 협의체 협상 자체가 무용지물에 빠진 데다 광주 서구을 보선마저 천 전 장관이 완주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의당과 노동당이 4자 협의체 ‘들러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국민모임 “진보 분열 없다”…鄭 단일화 꼬이면 광주도 위험
노동당은 정 위원장의 관악을 출마 당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4자의 재·보선 공동대응 가능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유감을 표했다. 김세균 국민모임 상임공동위원장이 ‘진보재편’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 위원장의 출마를 반대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정동영’ 변수로 4자 협의체의 판이 흔들리면서 후보 단일화는 물론 재·보선 이후 진보 재편마저 쉽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통합파로 알려진 나 대표는 당내 독자파로부터 ‘완주’에 대한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성당원제를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의 특성상 당원 의사 없이 중도 사퇴할 경우 대표직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나 대표가 독자완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당 대표가 나선 노동당이 후보직을 정 위원장에게 넘겨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4자 협의체 순항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광주 서구을 후보 단일화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측은 정 위원장이 서울 관악을 후보로 정리된다면, 광주 서구을 지역 등에서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천 전 장관이 끝내 독자 노선을 고수할 경우 광주 서구을 지역의 연대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새정치연합 대 비 새정치연합’ 구도를 넘어 진보진영 연합 전선도 무너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광주 서구을에 당력을 쏟고 있는 정의당이 대의 차원에서 후보직 중도 사퇴 카드를 쓴다면, 당의 존재감은 물론 야권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일시에 놓치게 된다. 오는 7월 당 대표 경선을 앞둔 정의당으로선 최악의 국면을 맞는 셈이다.
국민모임 한 관계자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4자 협의체의 판이 깨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한 뒤 “누가 서민을 위하고, 누가 (거대 양당을) 이길 수 있는 후보인지가 후보 연대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은 4자 협의체 구성원들과 충분한 소통을 통해 마지막까지 진보결집을 위해 나설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후보 단일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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