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일본 규슈(九州)대 의대에 과거 포로를 상대로 잔악한 생체실험을 저지른 선배들의 만행을 반성하는 전시물이 설치됐다. 규슈대는 최근까지 이 ‘생체실험 사건’의 거론을 금기시하며 공개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교도통신은 후쿠오카(福岡)시 규슈대 의학부가 4일 개관한 의학 역사관에 태평양 전쟁 말기에 있던 ‘규슈대 생체해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전시물 2점을 비치했다고 보도했다. 규슈대 의학부 교수회는 전시 패널에 “우리는 비인도적인 생체해부사건으로 희생된 외국인 병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마음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1948년 (학내) ‘반성과 결의의 모임’에서 선배들이 결의했던 의사로서의 모럴(도덕)과 의학자로서의 연구 윤리를 재확인한다”며 “앞으로 이 결의를 계승할 것을 단호히 맹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스미모토 히데키(住本英樹) 규슈대 의학부장은 의학 역사관 개관식에서 “의학, 의료의 역사에서 의학부가 해 온 역할과 공적, 반성해야 할 과거를 되돌아보고, 다음에 나아갈 길을 사색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1945년 규슈대 의학부 교수들은 규슈 중서부 지역의 구마모토(熊本)현에서 격추된 미군 B29폭격기 탑승자 중 8명을 실습실에서 해부했다. 교수들은 희석한 바닷물을 미군 포로의 혈관에 주입하거나 폐를 절제하는 등의 야만스러운 행위를 감행했다. 종전 후 연합군의 군사법정에서 생체해부 사건에 대학이 조직적으로 관여한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의사들은 법의 심판대 앞에 서야 했다.
요코하마(橫浜)의 군사법정에서 이 가운데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등 사건 관계자 2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미국은 대(對)일본 유화정책을 펼쳤고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훗날 사면 절차를 거쳐 관련자들은 대부분 석방됐으며 생체실험을 주도한 교수 1명은 옥중에서 자살했다.
의학 역사관은 동창회의 기부금으로 건설됐으며 오는 8일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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