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약장수’ 따로 살고 계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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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0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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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약장수' 포스터]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자~ 이 약 한번 자셔봐! 우리 어머니들 허리 아프고 다리 쑤신 게 말끔하게 낫는 만병통치약.”

언젠가 들어본듯한 이 말. 사은품을 주겠다고 선전해 손님을 끌어 모은 뒤 마지막에 판매품을 꺼내 높은 가격의 물건을 강매하는 형태의 홍보관 ‘떴다방’. 별 효능이 없는 건강음료를 고가에 팔기 때문일까? 보통 노인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떴다방’은 ‘약장수’라고도 불린다. 노년층은 왜 ‘떴다방’을 방문하는 것일까? 정말 휴지나 계란 등 사은품에 현혹돼서 찾는 것일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공·배급한 대명문화공장의 두 번째 작품 ‘약장수’(감독 조치언·제작 26컴퍼니)는 ‘떴다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은 일범(김인권)은 일용직을 전전했다.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아 그나마 수입이 있던 대리운전 회사에서도 짤린다. 아픈 딸 미우(황인영)의 치료비도 없는데 6개월치 밀린 월세 때문에 방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경고에 전전긍긍하는 아내 미란(장소연)을 생각하면 ‘떴다방’의 유혹을 뿌리칠 수만은 없었다.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홍보관 점장 철중(박철민)은 “우리 덕분에 우울증 고치신 어머니들이 많다”면서 “요즘 부모님이랑 놀아주는 자식들이 얼마나 있느냐. 우리가 자식보다 낫다”며 일범을 꼬인다.

“홍보관이면 늙으신 어르신들 등쳐먹는 약장수가 아니냐”고 했던 일범도 ‘고추’라는 애칭도 얻으며 점점 일에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일찌감치 홍보관 일에 이골이 난 호철(최재환) 팀장과 형수(정형석) 팀장보다 실적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범을 키우기 위해 철중은 “고추의 샴푸 하나만 사주실 어머니 안 계시느냐”며 “없으면 고추, 가족 굶겨야한다”고 말한다.

“엄마”라고 부르는 일범의 서글서글한 대우에 고마움을 느꼈던 옥님(이주실)은 손을 들어준다.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올린 일범은 이를 계기로 나체쇼까지 펼치며 수당을 챙긴다.

옥님은 검사 아들(조민기)을 둔 ‘장한 어머니상’까지 받은 인물. 하지만 실상은 옆집 친구(박혜진)의 손녀를 봐주는 시간을 제외하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TV를 보는 독거노인이다.

생일날 찾아오기로 했던 검사 아들은 “일이 생겨서 오늘 못 찾아뵐 것 같다”고 말한다. 오기로 한 날에는 밤 10시가 넘어 찾아와 10분도 머물지 않고, 아들을 기다리느라 저녁까지 거른 어머니를 홀로 두고 10평 남짓한 어머니의 집을 떠난다. “아범아, 언제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애미랑 놀아주지 않을래? 엄마가 팁도 줄께”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 아들의 표정은 ‘나도 저러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만든다.

이미 홍보관에 재미를 붙인 친구를 따라 찾아간 그곳에서 사람 사는 기분을 느낀 옥님은 계속해서 ‘떴다방’을 찾아간다. 갈 때마다 억지로 물건을 사게 된 옥님. 이불장은 홍보관에서 산 물건들로 가득 찼다. 대금 지불일이 다가오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을 찾아간다.

딸은 “오빠가 용돈 안 주느냐”면서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이어 “300만원이란 큰 돈이 어디 있느냐. 혹시 이상한 물건 산 것 아니냐”고 다그치며 “오빠에게 말하겠다”고 했다.

며느리는 시누이의 연락을 받고 불쾌해하며 전화로 “돈이 필요하시면 저한테 직접 말하세요. 그리고 아가씨가 저한테 그런 말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해 옥님을 당황하게 만든다.

철중은 옥님 엄마가 잔금을 치를지 말지를 놓고 일범과 내기를 한다. 돈을 내면 월급에 수당까지 두둑하게 챙겨주고, 오지 않으면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것. 흔쾌히 내기에 응하지만, 옥님은 환불받은 CT 촬영비용 40만원만 보낸다.

결국 일범은 옥님의 집으로 찾아간다.
 

[사진=영화 '약장수' 스틸컷]

‘연기로 감동을 주는 배우’ 김인권의 호연이 돋보인다. 직장을 잃은 가장의 마음을 매끄럽게 표현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박봉남에 이어 메소드 연기로 일범을 연기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열한시’ 등 흥행에 성공한 블록버스터부터 ‘또 하나의 약속’ 등 의미가 있는 작품까지, 특유의 입담으로 어떤 역할도 돋보이게 만드는 배우 박철민,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 최우수예술인에 빛나는 이주실의 앙상블은 104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몰입도를 높인다.

박철민에 버금가는 신스틸러 최재환과 성우 출신의 정형석의 연기도 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지난 2011년 ‘도가니’에 등장한 법정신에서 수화통역사로 분한 장소연도 눈길을 끈다. 박철민과는 ‘또 하나의 약속’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미우 역의 황인영 양은 아역배우가 아니라 조치언 감독 지인의 딸로, 이번이 첫 작품이다.

조치언 감독은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떴다방’으로 활용된 홍보관을 빌려 촬영했으며, 전문 보조출연자가 아닌 실제로 홍보관을 찾은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을 섭외해 사실성을 높였다.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들을 연기한 일범과 자랑스러운 아들을 뒀지만 외로움에 떠는 옥님의 기구한 사연은 오는 23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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