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화려한 옷들을 입었다면 이제는 중후한 멋이 있는 수트로 이미지 변신을 꾀한 강제규 감독을 지난 2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났다.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죠. 앞으로의 20년을, 영화에 올인할 수 있을까? 건강이 허락하고, 감이 죽지 않아야 할 수 있을텐데…. 스스로 새로움을 향한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자문하죠. 관객과 소통하고 교감하기 위해 저의 건강과 노력을 지속하고 싶어요. 앞으로 20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임권택 감독님처럼 계속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롤모델이 없다면 씁쓸하겠죠.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 것 외에 행복이 뭐가 있을까요?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어 어떤 때는 그만 내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뭐를 하지?’ 생각하면 막막하긴 하죠(웃음).”
‘장수상회’는 그런 강제규 감독의 바람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는 강 감독은 “그동안 외부적인 환경이나 여건 때문에 대규모 예산이 드는 작품이나 스케일이 큰 영화를 하다보니 호흡이 길었던 게 사실”이라며 “시나리오 작업에 1년 반, 프리프로덕션으로 최소 7~8개월, 촬영 1년에 후반작업까지 하면 물리적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든다.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이나 ‘명량’ 김한민 감독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라고 ‘민우씨 오는 날’과 ‘장수상회’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장수상회’의 각본은 이상현 작가가 썼다. 강제규 감독은 각본을 보자마자 주인공 김성칠과 임금님 역할에 박근형, 윤여정 두 배우를 떠올렸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오랜 기간 연기자로서 활동해온 두 배우가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기 같고 소년의 모습이 있는 성칠과, 소녀답고 풋풋하며 여린 금님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박근형과 윤여정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재미있겠다고 판단했다.
“저도 관객 입장에서 보고 싶었다”는 강제규 감독은 “집사람(배우 박성미)과 윤여정이 선후배 관계라 물어봤었다. 겉보기와 달리 의외로 소녀같고 여성스러운 멋과 따뜻한 면이 많은 배우라고 하더라. 말은 거침없이 하지만 이면은 다른 배우라는 설명이었다”고 회상했다.
‘장수상회’는 노년의 사랑과 함께, 최근 대두된 사회적 문제인 ‘고독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홀로 살고 있는 성칠은 집 책상에 ‘제 이름은 김성칠입니다. 제가 죽으면 서랍에 있는 돈으로 장례를 치러주세요’라는 메모장을 남겨 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도 심각해진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 사회에 들어갔는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저렇게 늙어가고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겼죠. ‘웰빙’이란 말과 함께 ‘웰다잉’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는데,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웰다잉을 해야 하는가 생각했죠. 얼마 전 일본 소식을 들어보니 혼자 살다가 돌아가신 독거 노인들의 신원을 시에서 파악하고 있다가 돌아가시면 화장을 해 가족들에게 (유골을)택배로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씁쓸했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뜻하게 죽는 것도 의미 있고 소중한 일인데…. 미래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았어요.”
“어제 VIP시사회에 참석했는데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촬영을 하면서, 편집을 하면서 그렇게 봤는데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알고 봐도 다른 느낌이 들었어요. 혹시나 두 번 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첫 번째와 다른 연기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배우들의 디테일이 살아있죠.”
‘장수상회’를 보러갈 때는 손수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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