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영국 야당인 노동당이 오는 5월 7일 총선을 앞두고 장기 체류 외국인의 국외 소득세 부과를 면제해주는 ‘송금주의 과세제(Non-Dom)'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8일(현지시간) 내놨다.
영국 국세청(HMRC)은 12년 이상 자국에 체류한 외국인이 송금주의 과세자로 등록하고 연간 정해진 비용을 내면 국외소득의 과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송금주의 과세자는 영국에 살지만 원 거주지가 다른 나라로 명시돼 있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교육·취업 등 각종 혜택을 받고 있으나 세금은 일반 영국 시민보다 적게 낸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영국에서 소득을 얻으면 정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송금주의 과세제 때문에 사실상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국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영국으로 송금해도 영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송금주의 과세자로 등록된 외국인들은 최상위 부유층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 제도에 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금융위기 이후 영국 경제가 악화하면서 영국인 사이에 불만 수위가 높아졌다. 노동당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에드 발스 재무장관은 “이 제도가 폐지되면 10억 파운드(약 1조6247억원)의 세금이 걷힐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는 한 대학 연설에서 송금주의 과세제에 대해 “최상위층 일부가 다른 세금 규정을 적용받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200년 동안 이어져 온 불가사의한 제도로 21세기에는 옹호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을 ‘역외 조세회피처’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금주의 과세제는 제국주의 시절인 1799년 처음 도입됐다. 식민지에 거주하는 영국인이 현지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영국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영국을 원 거주지로 유지하려는 꼼수에서 만들어졌다. 현재는 영국 거주 외국인이 이 제도를 이용해 자산에 관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이런 ‘꼼수’는 대를 이어 전해져 영국 시민의 비난을 사고 있다.
보수당 정부도 여론을 의식해 지난해 12월 최근 20년 가운데 17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에게 물리는 연간 부담금을 5만 파운드(약 5400만원)에서 9만 파운드(약 9800만원)로 올리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노동당은 “내년 4월부터 송금주의 신규 등록을 없애고 기존 등록자들에게는 세금 문제를 정리할 수 있도록 짧은 유예 기간을 주겠다”며 한층 더 수위가 센 공약을 내건 것이다.
이날 보수당 정부의 조지 오스본 장관은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 드러날 경제적 혼란의 한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지난달 보수당 지지를 공개 선언했던 재계 인사 103명 가운데 한 명인 던칸 바나틴은 노동당의 송금주의 과세제 폐지 공약 발표 후 자신의 트위터에 “내 표를 얻었다”며 “어떤 정당이 이런 용기를 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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