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관악을) 최신형·김혜란 기자=여야는 지난 9일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4·29 재·보궐선거에 돌입했다. 4·29 재·보선이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중원, 인천 서·강화을, 광주 서을 등 4곳을 직접 찾아 현장 민심을 바탕으로 각 후보별 특징과 판세를 전망해본다. <편집자 주>
“27년간 야당만 뽑아줬는데, 변한 게 없잖아요.”(50대 주부) vs “여긴 호남 사람들이 많다. 한 40% 정도는 호남 출신 이주자다. 당성이 어디 가겠느냐.”(60대 시장상인)
1970년∼1980년 ‘달동네 판자촌’으로 유명했던 지역. 도시 철거민의 애환을 그린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곳. 바위가 많은 산자락에 인접한 탓에 사실상 ‘버려진 땅’으로 불린 동네. 그래서 6·25 전쟁 이후 무산자들이 대거 몰린 지역. 서울 관악구(인구 51만 7570명·행정자치부 2014년 통계)다.
관악구는 서울의 ‘호남’이다. 야권의 ‘심장’이자 ‘자존심’이다. 실제 야권은 1988년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도입 이래 27년 동안 관악을 지역을 석권했다.
이는 관악구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다. 관악구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무허가 판잣집에 살던 이들이 선택한 ‘마지막 비상구’였다. 1973년 관악구로 분구된 이후 이 지역은 ‘도시 빈민층’의 표상이 됐다.
지금은 산비탈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서 있는 달동네 판잣집이 사라졌지만, 13일 찾아간 고시촌과 재래시장 등지에는 ‘신산했던’ 그 시절 주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지역 곳곳의 ‘음습한 기운’도 여전했다. 마치 관악의 아픔은 우리 시대가 공유해야 할 역사라고 시위하듯.
이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 3년차 1차 승부처인 4·29 재·보선을 앞둔 이 지역 민심은 크게 출렁였다. 오신환(새누리당)·정태호(새정치민주연합)·정동영(국민모임) 후보 간 3파전 양상으로 치러지는 관악을 보궐선거 판세가 안갯속 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도 삼킨 지역개발 욕구
첫 번째로 방문한 신림중앙시장. 이곳에서 만난 박임순(64·여)씨는 “여태까지 2번만 찍었는데, 아무 발전도 없으니까 이번에는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여당이냐, 야당이냐’를 떠나 낙후된 지역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후보를 찍겠다는 얘기다.
관악 주민의 최대 관심사도 ‘지역개발’이었다. 민심의 풍향계인 재래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살림살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역개발론 앞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설 자리는 좁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먹고살게 해 달라’는 일종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관악을 휩쓸었다.
박씨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새누리당에) 반감이 있기는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의혹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라만 시끄럽게 됐다”고 말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민경아(64·여)씨는 “(성완종 리스트에) 별로 관심 없다”며 “확률로 보면 새누리당이 될 것 같다. 야당 표가 분산돼 (오신환 후보가) 유리하지 않나 싶다”고 오 후보를 추어올렸다.
조혜자(74·여)씨도 “박 대통령 임기가 2년 반 남았는데 대통령 밀어줘야 한다”며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서모씨(53·남)는 “오신환이 괜찮은 것 같다. 정동영은 나와 봤자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 “오신환이 (지역을) 잘 다니는 것 같다. (19대 총선거 때 관악을 출마해) 여기서 (인지도가)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주민 정모씨(45·남)는 “이 지역은 호남 주민이 많아서 정동영이나 정태호 후보 중 한 명이 될 것 같다”며 “정태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지만, 야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2030 “야권분열 때문에…” vs 5060 “오신환”
이어 삼성시장과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 이들은 세대별로 지지성향이 뚜렷이 갈렸다.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등을 준비하는 2030세대는 ‘박근혜 정권 심판’을 주장한 반면, 5060세대는 ‘판 갈이론’으로 맞섰다. 다만 세대를 불문하고 정치 자체를 불신하는 ‘반(反) 정치문화’도 엿보였다.
시장 근처에서 만난 직장인 이승형씨(36·남)는 “투표권을 가진 이래 야당만 찍었다. 이번에도 야당 후보를 찍을 것 같다”면서도 “야권 분열로 최종 후보를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제1야당으로 표가 모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주변 사람들과 선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대체로 정당에 상관없이 신림의 낙후된 이미지만 벗어나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며 “대체적인 여론은 ‘여당이냐, 큰 인물이냐’로 양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법시험 막차를 타기 위해 고시를 준비 중인 백영훈(31·남)씨는 “최근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다”며 “다만 신분이 신분인 만큼 정말로 사법시험 존치를 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냐, 이 부분이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대학동 인근 원룸촌에서 만난 정혜정(29·여)씨는 “정치에 많은 관심이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한 뒤 “2030세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1야당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우태호(33·남)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면서 “선거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령층의 의견은 확고했다. 삼성시장 인근에서 만난 이상철(60·남)씨는 “관악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황모씨도 “이번에는 바꿔서 본때를 보여줘야지, 야당이 정신 차린다”고 일침을 놨다. 서울 지역의 야권의 심장, 관악을 지역은 ‘이제는’과 ‘그래도’의 결투장이었다. 결전의 날은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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