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괄량이 길들이기_김지영,김현웅]
남녀 무용수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목마에 거꾸로 매달려 승강이를 벌이는가 하면, 이리뛰고 저리뛰며 고난도에 묘기에 가까운 동작들로 무술도장 같기도 하다. 그지없이 우아하기만 했던 발레리나들은 '몸 개그'를 펼쳐보이며 제대로 망가졌다.
“그동안 비련의 여주인공만 맡았기 때문에 이렇게 무대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맏언니'인 수석무용수 김지영(37)은 18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희노애락의 표정과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한 그는 이번 무대에서 주인공 말괄량이 '카테리나'가 되어 남편에게 주먹을 겨누고 팔을 물어 뜯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비련의 여주인공에서 왈가닥으로 변신한 김지영은 "처음 해보는 역할이라 동작이나 캐릭터 등 모든 것이 아직은 새롭고 불편하지만 잘 맞춰나가면 굉장히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기존의 클래식 발레 주인공들은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신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들도 '발레' 하면 어렵고 지겹게만 생각하는데 이번 작품은 굉장히 코믹하고 재미있어요. 춤을 보여주기 위한 발레가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를 춤으로 들려주는 작품이죠."
김지영은 1997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활동하다 2002~2009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하며 유럽에 이름을 알렸다. 2009년 국립발레단에 복귀해 지금에 이르렀다. 내년이면 프로에 데뷔한 지 햇수로 20년이다. 김지영은 "신작을 할 때는 처음에는 힘들고,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지 않으면 계속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작품들은 발전 가능성과 동기를 부여해서 무용수로서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며 생생한 에너지를 전달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을 각색한 작품으로, 비극이 많은 발레 작품 가운데 몇개 되지 않은 희극발레다.
천방지축 '카테리나'와 그녀를 현모양처로 길들이는 '페트루키오'의 팽팽한 공방전을 유쾌하게 그린다. 동시에 무용수에게는 고도의 테크닉과 연기를 요구한다.
특히 '파드되'(2인무)는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김지영이 목마 장면 연습 때 "어떡해!", "아, 힘들어!"를 연발할 만큼 어렵다. 김지영은 "파트너인 김현웅 씨와는 그동안 호흡을 많이 맞춰왔지만 그럼에도 어려울 만큼 까다롭다"면서 "몸은 힘들지만 희극 작품의 매력에 빠져 연습을 게을리 할수 없다"고 했다.
'말괄랑이 길들이기'는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도전이자 관객과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강수진 예술감독이 취임하면서 '관객들이 발레를 볼 때 '있는 그대로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생각났다는 공연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강수진 감독이 역점을 두고 있는 발레의 대중화라는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했다.
2006년 강수진 예술감독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국내 초연했다. 국립발레단이 이번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권을 얻어 무대에 올린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1997년부터 '카테리나' 역을 맡았던 강 예술감독이 직접 지도하고 있다.
'발레는 어렵다', '발레는 슬픈 이야기만 있다' 등의 편견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강수진 감독은 "보이는 그대로의 캐릭터 특징과 함께 무용수들이 그려내는 드라마틱한 연기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김지영·이은원·신승원, 김현웅·이동훈·이재우 등 국립발레단의 간판 무용수들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9일부터 5월3일까지.(02)587-6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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