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Talk] '도시 그리기' 서용선 '현대판 역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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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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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미술관-학고재갤러리서 동시 개인전..14조각 목각판화등 100여점 전시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용선 화백.이 지하 1층에 있는 목조각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기자=거친 붓터치, 강렬한 원색, 그리고 붉은색의 인물들. 서용선 화백(64)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작품과 닮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무언가를 바라보는 진중한 시선, '도시의 관찰자'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도시 풍경을 천착해오고 있다.  도시는 한 시대의 특징적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작품은 '현대판 역사화'다. 도시의 삶이 주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  사건과 뉴스, 현대인의 삶이 일기처럼 기록되어있다.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도시 풍경'을 관찰하는 이방인이어서일가. 그의 작품 속 장소와 인물들은 무표정하고 심각하다. 다만 움직일뿐이다. '무언극의 연극 배우들'같다. 상황의 공간만 다를 뿐 세상은 같은 풍경이다.그의 작품엣ㄴ 뉴욕도 베를린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사람들로 부대끼고 있다. 붉은 얼굴, 마스크를 쓴 것같은 사람들 모습에는 억눌린 내면 심리와 삶의 무게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도시의 시대적 징후를 참고하되, 그 속에서 살아가며 취하는 모든 행태에 집중해야 한다. 도시적 환경이나 시대적 징후를 보여주는 배경이 비교적 제거된 자화상이나 초상의 경우에도 그들의 몸짓과 인간을 바라보는 나의 관심이 응축된 것이다.” (2012.6.18-20 일기)

 서용선 화백의 개인전이 금호미술관과 학고재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도시’를 소재로 한 연작을 대규모로 선보이는 전시다. 붉은색과 초록색 선이 그어진 인물들, 역사와 신화, 전쟁과 도시 등 다양한 주제에 진지하게 접근해 온 그의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금호미술관은 처음으로 작업한 소나무 목각판화등 대작들을 볼수 있다. 회화, 드로잉, 조각 등 10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장은 1층부터 강렬하다.
 

[2014 뉴스와 사건 (2014 News and Affairs), Acrylic on wood board, 272x585cm (14pcs), 2015]


 14조각의 휘어진 소나무판에 담아낸 '목조판각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화백은 “캔버스에 그리기보다 목판에 거친 느낌으로 새김으로써 사건이 주는 날것의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4 뉴스와 사건'이라는 제목이 달린 작품은 2014년 주요 사건들을 묘사했다.  노란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행렬들, 푸른색의 배, 세월호 침몰사고를 드러낸다. 또 통진당 해산 뉴스 보도에 대해 다룸으로써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들이 되풀이되는 현실을 짚는다.

 목조에 거칠게 새긴 형상과 덧입혀진 색채는 사건을 보다 즉각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 이야기'에 대해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 화백이 생각하는 도시 권력의 관계와 도시 구조에 관한 가치관을 엿볼수 있다. 
 
 

[역삼역 4 (Yeoksam Station 4), Acrylic on canvas, 161.5x130cm, 2015]


 2층, 3층, 지하 1층 전시장은 도시의 풍경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베를린, 뉴욕, 서울, 베이징, 멜버른 풍경이 담겼다.  지하철, 거리, 카페, 광장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그 도시에 따른 분위기와 문화와 역사적 특색을 읽어 낼 수 있다.

 2층에서는 한국 서울의 번화가인 역삼역을 그린 회화 4점과 인물 두상 조각 39점, 드로잉 등을 비롯해 작가의 과업을 살필 수 있는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삼역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서울 풍경에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양복을 입고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는 인물들은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 짓눌린 우리의 모습이다. 
 
“60년대 내가 자란 서울의 변두리 골목에서는 남자들이 흔히 이와 같은 (런닝셔츠 차림의) 모습으로 길거리에 앉아 있곤 하였다 […] 이제 서울의 대다수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저 아파트 거실에서나 흰 런닝셔츠를 입고 서성거린다. 80년대 아니 70년대 후반 미술대학초년시기에도 나는 도시의 모습에, 정확하게는 도시의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었다. 그 모습들이 70년대 내가 살던 서울의 대표적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넥타이를 조여 맨 양복 입은 남자들의 행진은 도시의 전형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2012. 6.18-20 일기)
 
 

[좌) U-Bahn 알렉산더플라츠 2 (U-Bahn Alexanderplatz 2), Acrylic on canvas, 279.5x207cm, 2015 우) 베이징 자이오닝거리 (Jaioning Street, Beijing), Acrylic on canvas, 200x200cm, 2009-2015]


 3층 전시장은 지하철 플랫폼과 그 안에서 서성대는 인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뉴욕의 풍경은 고독의 느낌이 두드러진다.  호주의 멜버른 풍경은 여유롭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소소한 도시의 삶을 보여준다.
 
“평소의 내 그림보다 다소 어두운 녹갈색의 분위기는 베를린의 도시환경과 관계가 있다. 내가 본 도시 베를린은 도시내부에 있는 크고 작은 많은 공원과 가로수 때문에 여름에는 풍부한 녹색을 드러낸다. 게다가 도시내부의 운하의 물색 또한 짙은 황록색이며 오래 된 많은 건물의 지붕들은 동판으로 씌워져 있어, 오랜 세월로 인해 녹이 슨 청록색이다. 내가 머물며 작업했던 퀘페니커 도로에 붙어 있는 맬키쉬 뮤지엄의 뾰족한 고딕식 지붕도 색 바랜 녹색지붕이다. 거리에 세워진 많은 동상들도 짙은 갈색과 녹슨 청동색으로 이루어져 도시의 색채를 드러낸다.“ (2012. 6.18-20 일기)
 
 지하 1층 전시 공간은 독일 베를린의 풍경 4점과 베를린 시민 조각 3점, 중국 베이징의 풍경 4점을 선보인다. 베를린의 풍경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알렉산더광장(Alexanderplatz) 그림들이다.  알렉산더플라츠와 지하철역사 내부의 모습들은 베를린을 도시의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도 전통과 자연환경을 보존한 장소로서 제시한다.

 중국의 풍경은 전광판과 자동화 기기,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점차 자본주의가 확산되며 디지털화하는 베이징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수많은 나라의 '도시풍경'을 담아온 서 화백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속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며 “모든 것이 편리하고 사방으로 통하도록 발전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한편, 학고재갤러리에서는 도시풍경을 확대하여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한다.  베를린의 알렉산더플라츠 광장과 메르키시 운하를 지나 뉴욕과 시드니의 전철 안을 거쳐 한국의 인천공항까지 다섯 도시의 모습과 도시 속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회화 16점과 드로잉 2점을 볼 수 있다.  

현지에서 목격하고 관찰해 도시작업을 화폭에 쏟아내는 서 화백은 올해는 파리와 일본 고야산에 머물면서 작업할 예정이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02)720-5114.
 

[서용선화백. 사진=박현주기자]

[Seeing, Acrylic on canvas, 55.5x30.5cm, 2013]

▶서용선화백= 질기고 성긴 작품처럼 그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공동묘지 앞에 텐트를 치고 생활할 정도로 어려운 유년기를 거쳤다. 패싸움과 노름 등 방황하는 사춘기도 보냈다. 대학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화가가 된 것은 이중섭 때문이었다.
고교를 졸업한 70년대 당시는 중동바람으로 중장비 기술이 최고였다. 중장비 학원을 알아보려고 신문광고를 훑어보다가 귀퉁이에서 발견한 이중섭의 기사. 가난한 예술가의 열정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정신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항상 뒤처지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열정으로 바뀌었다. 남들보다 4~5년 늦게 24세에 (서울대)미대를 들어갔고 그곳에서 22년간 교수로 지냈다. 하지만 갑갑했다. “그림에 집중하고 싶어”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때려쳤다. 이후 해외를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하루 12시간씩 작업하고, 책을 읽고, 그림 그리고, 전시하고 자유를 누리고 있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4년 제 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79 B.F.A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1982 M.F.A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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