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본질은 친박(친박근혜) 권력형 비리게이트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 의혹’이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느냐. 그만큼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과 분노가 드러날 것이다.”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확신에 차있었다. 2012년 총·대선을 기점으로 범야권은 표 확장성과 야권연대에 매몰하는 전략 부재 등 갖은 한계를 노출했지만, 양 사무총장은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는다”고 단언했다.
4·29 재·보궐선거를 꼬박 일주일 앞둔 22일 오전 국회 본청 새정치연합 사무총장실을 찾았다. 제1야당이 선거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국회의원 재·보선 4곳(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 중원, 인천 서·강화을, 광주 서구을) 중 어느 한 곳도 압도하지 못하면서 초조함이 팽배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양 사무총장은 아주경제와의 인터뷰 내내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양 사무총장은 4·29 재·보선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중간 심판”이라고 잘라 말한 뒤 “다수 국민이 ‘허니문 기간’인 집권 1∼2년차 땐 정권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지만, 지금은 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2·8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출범한 문재인호(號)에 대한 평가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 역시 2012년 대선에서 맞붙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의 연장 선상인 셈이다.
그는 이번 재·보선의 변수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투표율’ 등을 꼽았다. 양 사무총장은 “재·보선 과정에서 커다란 돌출 변수가 생겼다. 국민들의 분노가 (아래로부터) 끓어오르고 있다”며 “권력형 비리에 대한 심판이 표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낮은 투표율 등의 재·보선 한계를 극복한다면, 4대 0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궁금했다. 평소 개혁적 성향을 보인 양 사무총장은 ‘성완종 파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도로 차떼기’ 당”이라는 경고성 발언. 이어 “‘국기’와 연결된 친박 권력형 비리게이트 의혹으로 이제는 정당 차원을 넘어 정치 자체를 개편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판을 전면적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정권 정당성까지 연결”
양 사무총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얘기를 꺼내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와 1·2·3대 대통령 비서실장,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핵심들이 줄줄이 의혹을 받고 있다”며 “정치인을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3000만원 수수 의혹과 관련해 “30분 뒤에, 1시간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 금품 수수 의혹의 진실이 중요하지만, 이 총리의 거듭된 거짓말로 국민적 분노가 더 치밀어 오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양 사무총장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정권 심판론’이 약화됐다는 관측에 대해 “사의 표명으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잠재우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한 나라의 총리가 3000만원 금품수수 의혹을 받는 것 자체가 엄청난 권력형 비리 파문에 휩싸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 중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주축이었던 △서병수 부산시장(당시 당무조정본부장) △유정복 인천시장(직능총괄본부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조직총괄부장) 등을 거론하며 “만일 그것이 대선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면, 정권의 정당성까지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이쯤 궁금증이 생겼다. 애초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거진 직후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공격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 그래서 출범한 것이 ‘친박 권력형 비리게이트 대책위원회.’ ‘성완종 리스트’ 파문 초반 공세 폭을 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이 아닌 친박계로 한정한 셈이다.
중도층 이탈을 우려한 제1야당이 대선자금 의혹보다 한 단계 낮춘 여권 실세의 비리 의혹에 초점을 맞추면서 ‘프레임 전략’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왔다.
양 사무총장은 “아직 박 대통령의 연루가 확실치 않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도 “다만 대선자금으로의 유입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정권의 정통성과 정당성의 본질을 건드릴 것”이라고 답했다.
◆“野 연루되면 처벌, 하지만 8인 先수사가 핵심”
양 사무총장은 검찰 수사의 핵심으로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여권 인사 8명에 대한 선(先) 수사”를 꼽았다.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통해 친박 권력형 비리게이트 의혹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메모 유서를 통해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에게 금품을 전달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범야권은 행정부 수반 2인자인 이 총리에게 자진사퇴를 촉구하며 대대적인 대여공세를 폈다. 결국 이 총리는 해외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주목할 대목은 범야권의 2차 타깃이다. 양 사무총장은 “유정복·서병수 시장은 선출직이다. ‘물러나야 한다’고 해서 사퇴하겠느냐. 하지만 이병기 실장은 이 총리와 마찬가지로 거짓말 해명이 드러나고 있다”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은 ‘권부 중의 권부’다. 국회의원과 비서실장이 단둘이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만남만 어렵나. 통화하기도 어렵다”며 “이 실장은 사퇴하는 게 맞다. 현직에 있으면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힐난했다.
이 지점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일부 언론이 제기한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야권 중진 7∼8명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보느냐”고. 양 사무총장은 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전형적인 물타기다. 다만 만일 야권 인사가 관련됐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야권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건의 본질은 8인에 대한 선 수사다. 성 전 회장의 메모지에 나온 여권 실세 8명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자 핵심이다.”
상설특별검사제(상설특검) 도입도 주요 의제였다. 상설특검 도입을 놓고 공수가 뒤바뀐 채 대치한 여야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별도 특검’ 도입 주장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문 대표는 양 사무총장과의 인터뷰 다음 날인 23일 이같이 요구하며 대여공세를 폈다.
새정치연합이 ‘별도 특검’을 주장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행 특검법에 따르면 특별검사 임명 절차는 ‘국회 특검후보추천위원회에서 2명 추천→대통령이 1명 선택’의 과정을 거친다.
후보추천위 위원은 총 7명으로, △여야 각 2명씩 4명 △나머지 3명은 법무부 차관·법원행정처 차장·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이 추천한다. 사정대상 1호가 사정의 주체가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양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 “특검에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 급박한 상황에서 이 총리의 거짓 진술이 나오고 있지 않나. 이것은 박근혜 정권이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라며 “다만 (당 내부적으로) 맨 처음 특검 주장을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우리도 의혹 대상자여서 특검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건은 투표율…鄭·千 탈당 옳지 않아”
인터뷰 후반부는 재·보선이 주요 화두였다. 양 사무총장은 “이번 선거의 세 가지 한계를 극복하면, 경우에 따라 4곳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선거의 한계로 △재·보선 특성상 낮은 투표율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 △네 곳 모두 원외 출신 후보 등을 꼽았다. 현재 당 내부적으로는 △서울 관악을 △인천 서구·강화을은 ‘접전’ △광주 서구을 △경기 성남 중원은 ‘추격’으로 판세를 전망하고 있다.
양 사무총장은 “이번 선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완종 파동’과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어려웠던 민생경제 등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 터져 나올 것”이라며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국정원(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간첩조작 사건, 인사 참사 등이 있지 않았느냐. 정권의 오만에 대한 심판 선거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역으로 우리 당이 어려울 수 있다. 이번 선거의 세 가지 한계로 재·보선 결과가 일반 민심과는 괴리되게 나올 수 있다”며 “100% 이긴다는 보장은 못 하지만, 지지도 흐름의 경향성으로 볼 때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양 사무총장은 핵심 변수인 투표율 전망을 해달라고 하자 “(통상적으로) 재·보선 투표율은 30% 내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높아질 것”이라며 “중간지대에 있고,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심판할 것이다. 투표가 아니면 무엇으로 심판하겠느냐”고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그는 야권분열에 따른 패배 가능성과 관련해선 “승리 지상주의에 빠진 감동 없는 단일화는 독”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야권연대는 국민과 당원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며 “이번 재·보선은 단일화 요인이 없는 선거다. 해산한 통합진보당과 우리 당을 탈당한 분들과 연대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보선 이후 야권발(發) 정계개편 전망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그의 입장은 “지금은 야권발 정계개편의 필요성이 가장 적은 시기”라는 것.
양 사무총장은 “정계개편은 현 야당 체제로는 도저히 안 될 때, 그래서 총·대선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만드는 돌파구”라며 “지금 당 지지율이나, 문 대표의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이 높지 않으냐. 야권통합이 아닌 새정치연합으로 뭉쳐 단일대오를 형성하자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당을 탈당한 ‘정동영·천정배’ 후보를 겨냥, “그분들의 탈당 명분이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을 포함해 탄핵정국 한 달 정도를 빼고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다. 이 상황에서 야권발 정계개편 주장은 생뚱맞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양 사무총장은 ‘숨은 표’와 관련해 “유선전화 등 여론조사 방법의 한계로 수치로 드러나지 않은 표가 있다”며 “실제 개표 결과는 여론조사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관건의 투표율이다. 박근혜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한 국민들이 표로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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