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시로 쓰는 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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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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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살다가 멈칫 꽃이 피고
길을 가다 선뜻 바람 부는 것이
언제 내 뜻이었던가
내 맘 아득히 비올 때면
옆에 있는 사람도 도진 듯 그립고
늦가을 부리 무뎌진 볕에 꽃잎지면
떠나고 보낸 사람들 하나하나 단풍 되어
가슴에 새겨지는 아픔이 언제 내 뜻이었는가


속절없는 인연에 외롭고
쉴 새 없는 가난이 등짐이던 밤 매듭마다
잠들다 깨 밤을 새고 다시 맞는 우울한 아침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밥 짓고 옷 깁고
따뜻히 덥혀놓은 그대 집 아랫목의 목 메이던 사랑


그 때까지도
나를 위한 누군가의 지극한 가슴앓이에
진정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사는 것 살다가 무엇이 되는 것도
내 뜻은 아니었지만
때로 어긋나는 인생에 분노하고 시기하고
때때로의 거짓이 부끄러워
오십 넘어 누군가에게 감사할 집을 짓는다


꽃 피고 바람 불면 그대로
그리운 대로 사랑하는 대로 뜻대로 터를 닦고
뼈를 발라 기둥을 세우고 바람을 막고
그대 배 터지게 밥 짓고 따뜻하게 등 누이고도 남을
충분한 볕이 드는 집
때론 배 아프게 낳고 마음 졸여 기른 아이들이
오물오물 아이를 낳아 꼼지락거리며
텃밭에서 빨간 토마토를 한 아름 따 가슴에 안고
하늘 넓은 다락방에서 잠이 들고


소문도 없이 첫눈 내리는 날
너무 오래 잊었던 벗이 젖은 편지로 돌아와
아궁이 가득 장작을 지피고
고기를 굽다 소주를 마시다 노래를 부르다
별 것도 아닌 인생 아쉽다 조롱하다
뒷산 억새처럼 늙어 갈 집


볕 잘 드는 마당가에는 매화나무 하나 심어 기르다
비늘마저 하얗게 늙어 지면
나무 아래 살 묻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이른 봄비에 깨어
키 작은 제비꽃이 되는 집


집을 짓는다
믿음 없이 산 삶의 부끄러움과
때때로의 잘못들을 마음에 새겨
오늘 집을 상량하며
머리 숙이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누가 살아도 해 뜨면 따뜻하고
낮엔 윤택하고 밤은 평온하며
어느 계절도 거스르지 않는
저기 바람 흘러가는
숲이나 강 들꽃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집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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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때 지붕 최상부 부재(종도리)를 올리면 상량식을 한다. 이때 지어 바치는 축문을 상량문이라 하는데 집 지은 내력이나 생각 등을 비단이나 종이에 써 나무에 홈을 파고 넣었다. 요즘은 대부분 집 지은 날짜와 짧은 기원문을 종도리에 직접 쓴다. 내 집 상량문을 지어보았다. 자신이 짓고 살 전원주택 상량문을 미리 지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로 쓰는 상량문 [사진=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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