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의회 연설에 대한 비난이 예상외로 거세지자 미 국무부는 이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성(性)을 목적으로 한 여성의 인신매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위안부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성을 목적으로 한 일본군의 여성 인신매매로서 끔찍하고 극악한 인권 침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는 아베 총리가 한국 등 주변국에 대한 사과없이 미국에 대해서만 고개를 숙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을 의식한 '원론적 언급'이자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와 무라야마담화를 철저하게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우회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스 외교위원장은 아베 총리의 연설이 끝나고 "나는 오늘 아베 총리의 연설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면서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 관계를 괴롭히는 과거사를 적절하게 해명할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하원에서 대외 외교를 대표하는 로이스 위원장이 외국 정상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공식 비판 성명을 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로이스 위원장은 성명에서 "나는 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얼마나 사과를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지적한 뒤 "아베 총리는 제2차세계대전 동안에 성노예로서 수모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해서 연설에서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엥겔 의원도 아베 총리의 연설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베 총리 연설 직후 성명에서 "아베 총리가 이전 총리들의 입장을 승계한다고 하면서도 위안부 문제, 특히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본회의장 갤러리에서 연설을 지켜보는 데도 직접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7년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미국 민주당 소속 마이크 혼다(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아베 총리가 오늘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제국주의 일본 군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만행, 이른바 '위안부' 범죄에 대해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계속 회피했는데 이는 충격적인 동시에 아주 부끄러운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차기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잠룡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도 전날(28일)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미 대선 잠룡들 가운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아베 총리의 태도 전환을 촉구한 것은 루비오 의원이 처음이다.
해외 언론도 위안부 문제 등 2차대전 가해 행위들에 대해 직접적인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미 의회 전문매체인 '더 힐'(The Hill)은 '일본 지도자의 2차대전 위안부에 대한 사과가 부족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베 총리가 연설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일본의 논쟁적 행위들에 대한 솔직한 사과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한국과 미국의 국회의원 여럿이 사과를 요구했지만,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전쟁 시 행위들에 대해 사죄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등 논쟁적인 문제들에는 완곡한 언급을 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미국 CNN 방송은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 맞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9)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CNN은 홈페이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인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잘못된 역사의 시정을 촉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김 할머니의 사연을 다뤘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미국에서 강조한 '화해의 힘'을 중국과 한국 등 침략전쟁 피해국들과도 공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30일 '미·일 정상회담 화해의 힘을 기반으로' 라는 사설에서 "한국, 미국, 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역사인식 위에서 끊임없이 지역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점"이라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미·일동맹강화는 중국을 겨냥한 이해타산의 산물"이라며 "미·중·일 3국이 아태지역에서 공존해 가는 장기적이 비전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사설에서 "미국과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 타결을 서두르는 것도 동북아 무역의 규칙을 중국보다 선제적으로 작성하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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