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 조선소가 조선산업 한·중·일 3강 구도를 깼다.
지난달 대규모 수주를 통해 필리핀이 처음으로 월간 수주량 세계 1위에 오른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6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4월 한달간 기준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75척, 174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기록했다. 3월에 비해 3척, 44만CGT 감소한 수치다.
클락슨리서치는 월간 보고서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및 미국, 유럽연합(EU) 등 유력 국가들만을 대상으로 국가별 데이터를 공개하는데, 이에 따르면 4월 한국의 수주량은 53만3275CGT로 중국(29만5513CGT), 일본(14만4000CGT)을 3개월째 앞질렀다. 한국은 지난 해 10월부터 3개월간 월별 수주실적에서 1위를 지켜오다가, 지난 1월에 한 차례 일본에 1위 자리를 내줬던 바 있다.
그런데, 이변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조선업계에서 클락슨리서치의 데이터를 추가 분석한 결과, 필리핀의 수주량이 59만CGT로 한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록 클락슨리서치가 공식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필리핀이 월간 수주실적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필리핀은 한진중공업 수빅 조선소가 완공돼 본격적인 조업에 들어간 2009년 이후 세계 4위 조선국가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데, 이번에 3대 국가를 넘어선 것이다.
필리핀의 성공은 한국과 일본 조선사들이 현지에 투자한 조선소 덕분에 가능했다.
4월 한 달간 필리핀 소재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는 컨테이너 운반선 8척(51만CGT), 일본의 쓰네이시 세부 조선소가 벌크선 6척(8만CGT)를 수주했다.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의 수주량은 같은 기간 한국 전체 수주량과 맞먹는다.
클락슨리서치의 발표수치는 시간 차이가 있어 회사의 실적과 차이가 있다. 한진중공업 자체 집계로는 4월에 세계최대급인 2만6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컨테이너선 3척, 1만1000TEU급 컨선 6척 등 총 초대형 컨테이너선 9척, 총 1조1000억원 상당의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한진중공업은 그동안 부산 영도조선소의 협소한 부지로 인해 초대형선 수주 경쟁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으나, 세계 최대 도크를 갖춘 필리핀 수빅조선소 완공 이후 잇달아 개가를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30만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수주한 이후 1만1000TEU급 컨선에 이어 2만6000TEU급 컨선까지 수주하며 초대형선 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진중공업측은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이번 결과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것이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에서 필리핀의 약진은 상선 수주시장에서 한층 경쟁이 치열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특히, 경기 성장 둔화 조짐이 일고 있는 중국이 예전만큼 수주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과 일본의 기술지원, 저렴한 인건비 등을 갖춘 필리핀의 약진이 향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중국의 수주 부진은 4월에도 계속됐다. 중국의 월별 수주실적이 30만CGT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9년 5월(5만8636CGT)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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