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지난 2월 중국 자본이 국내 대형 금융사를 인수하는 첫 사례가 나타났다. 중국 안방보험이 국내 8위 생명보험사인 동양생명을 1조1000억원 대에 인수하기로 한 것. 국내 생보업계를 포함한 금융권은 '차이나머니'의 공습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안방보험은 이미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벨기에 델타로이드은행과 피디아 보험 등 해외 부동산과 금융사를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중국 보험업계의 떠오르는 다크호스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는 중국 보험업 굴기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중국 보험사 ‘굴기’
“중국 보험시장은 현재 세계 5대 시장이다. 하지만 지난 해 기준 중국인 1인당 보험지출액은 180유로(약 21만원)으로 미국의 0.7%에 불과하다.”
지난 3월 상하이를 방문한 알리안츠그룹 미하엘 하이세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진단한 중국 보험시장 현황이다. 그는 알리안츠 경제연구소 통계를 인용해 중국 보험시장이 향후 10년간 연간 13%씩 성장해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세계 2대 보험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AIA보험 중국 차이창(蔡强) CEO도 “현재 중국 보험시장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삼박자를 모두 갖춘 황금기를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그간 은행업과 증권업 발전에 비해 미적지근했던 보험업이 중국 금융업의 굴기를 이끌 것이란 이야기다.
지난 해 중국 보험사가 거둔 실적은 쏠쏠하다. 중국 보험감독관리위원회(보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보험사 영업수익(수입 보험료)은 2조 위안(약 350조원)으로 전년 대비 17.5% 성장했다. 총 순이익 규모는 2046억6000만 위안(약 36조원)에 달해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증가 폭이다.
중국 상하이·선전 증시에 상장된 4대 보험사인 중국생명, 중국평안보험, 중국태평보험, 신화보험의 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13.8% 성장하며 보험업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이들 4개사의 총 순이익은 889억4500만 위안(약 15조원)에 달했다.
중국 보험업의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정부의 보험자산 투자 규제 완화, 세제혜택 등과 같은 '지원 사격'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지난 해 8월 국무원은 ‘보험업 신국10조(新國十條)’를 발표해 △ 보험자본의 운영방식 다양화 △ 시장친화적 감독관리체계 구축 △ 사회보장보험과 관련한 세제혜택 등 보험업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 GDP 대비 보험업 비중을 5%까지, 1인당 보험지출을 3500위안(약 61만원)까지 늘려 중국 전체 수입 보험료를 5조 위안(약 880조원)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최근엔 상업 건강보험 세제혜택도 마련해 연간 보험료 2400위안 이내 세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보험사의 투자수익 창출을 위해 해외 투자도 적극 밀어주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2년 10월부터 보험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를 허용했고 지난해 2월부터는 부동산 투자 제한요건도 자산의 20%에서 30%로 대폭 확대했다. 지난 4월 초에는 보험자산의 해외투자 대상도 한층 확대했다. 이로써 향후 10조 위안(약 1700조원)의 보험자산 중 일정 부분이 해외투자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늙어가는 중국을 살려라
향후 미국에 이어 세계 2대 시장이 될 중국 보험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것은 헬스케어와 인터넷, 그리고 ‘저우추취(走出去 해외투자)’다.
중국에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현재 60세 이상 노인인구는 2억 명에 달한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건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 헬스케어 산업은 2020년까지 8조 위안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각 보험사마다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헬스케어 산업에 진출하고 있는 이유다.
평안보험은 최근 보험사 최초로 온라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출시했다. 지난해말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모두 500만명이 가입해 현재 하루 평균 자문횟수는 3만건에 달하고 있다. 평안보험은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300명의 홈 닥터와 200여명의 각지 유명 병원 의료 전문가 인력풀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매년 최소 3억~5억 위안을 투입할 계획이다. 평안보험은 의료건강 보험상품과 온라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한데 묶어 보험 가입자의 의료 건강을 책임짐으로써 건강보험 손해율을 근본적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평안보험 외에 양광보험도 현재 자체적으로 병원 건설에 착수했으며, 신화보험 역시 전국 12개 지역에 헬스케어 센터를 설립한 상태다.
▲쑥쑥 크는 온라인보험
중국에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터넷금융 혁신 열풍이 보험업계에도 불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양회 '(兩會)에서 강조한 인터넷과 전통 산업을 결합한 혁신, 이른바 '인터넷 플러스(+)'가 보험업에서도 구현되고 있는 것.
보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온라인 수입 보험료는 858억9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195% 증가하는 등 온라인 보험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은행업계에서 알리바바 은행, 텐센트 은행 등 온라인 전문은행이 속속 생겨나듯 보험업계에도 당국의 정식 허가를 얻어 최초 온라인 보험사가 탄생했다. 중안(衆安)보험이다. 중국 대표 인터넷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 그리고 평안보험 주도로 지난 2013년 3월 설립됐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평안의 보험 인프라와 상품개발 능력, 텐센트의 광범위안 회원 및 미디어 자원, 알리바바의 마케팅 능력이 결합돼 중국 보험산업을 뒤흔들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년여간 중안보험은 50여개 온라인 전문 보험상품을 출시했다. 가입자 수는 2억명을 돌파했다. 지난 달에는 90억 위안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중안보험 기업가치는 현재 640억 달러로 평가 받고 있다.
차이나라이프, 타이캉보험 등 다른 보험사들도 자체 온라인 보험 플랫폼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혁신적인 보험상품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다만 혁신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 하면서 중국 당국의 제재를 받는 보험상품도 적지 않다.
최근 주가가 폭등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하한가보험’이 대표적이다. 해당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하면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이 상품은 겉으로 보기엔 보험상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배팅 비율에 따라 당청금이 확정되는 복권으로 간주돼 즉각 판매 중단됐다.
이밖에 대기오염 지수가 일정 수준을 넘기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스모그보험, 응원하던 팀이 탈락할 경우 온라인쇼핑몰 쿠폰을 지급하는 월드컵 유감보험, 불법주차 단속 적발시 보험회사가 대신 벌금을 부담하는 주차딱지 보험 등도 출시되자 마자 즉각 판매 중단됐다.
▲해외자산 ‘사재기’
보험업 활황으로 실탄을 두둑이 보유한 중국 보험사의 해외 확장세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 해 12월 기준 중국 보험사산의 해외 투자 총액은 239억5000만 달러로 전체 보험자산의 1.44%에 달했다. 이는 2012년 말보다 146% 이상 증가한 수치다. 중국 보험사들이 해외 자산을 거침없이 매입하며 글로벌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형국이다.
안방보험이 대표적이다. 최근 우리나라 동양생명의 인수자로 선정된 것은 물론 지난 2월엔 네덜란드 보험사를, 1월엔 벨기에 은행 인수 소식을 내놓으며 글로벌 금융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 위치한 미국의 자존심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도 인수하며 세계를 놀래켰다.
또 다른 중국보험사 양광보험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미국 뉴욕 맨하튼 중심가에 위치한 바카라호텔 인수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호주 시드니 도심 랜드마크로 불리는 '쉐라톤온더파크'를 인수하는 등 해외 호텔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 평안보험도 지난 달 중국 1위 보험사인 중국생명과 손잡고 미국 부동산기업 티시먼 스파이어와 함께 5억 달러 규모의 미국 보스턴항 부동산 재개발사업에도 투자했다. 앞서 1월엔 도이치자산운용공사로부터 런던금융 중심가에 위치한 '타워플레이스 빌딩'을 사들였다.
최근 들어 사세를 보험업까지 확장하고 있는 푸싱그룹은 지난 3일 미국 보험사 아이론쇼어의 지분 80%를 18억4000만 달러(약 1조9900억원)에 인수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에도 포르투갈 최대 보험사인 카이하 세구로스 에 사우데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 메도우브룩보험그룹(MIC)을 인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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