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세계 곳곳에서 불고 있는 민족주의 열풍이 글로벌 경제 위기를 높이는 변수로 부상했다. 세계 정치·경제 지형에서 미국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 각국이 기반 강화를 위해 민족주의를 고집하며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양상이다.
가장 최근 떠오른 민족주의 바람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이다. 영국 총선에서 EU탈퇴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브렉시트는 당장 영국의 최대 현안이 됐다.
이민자가 급증해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복지 부담을 늘린다는 인식이 불거지면서 영국 내에서는 반(反)EU 여론이 확산했다. 회원국 내 인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 EU협약에 반기를 든 것이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EU는 물론 영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손실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베텔스만 재단과 민간경제연구소 Ifo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2030년 국내총생산(GDP)은 작년보다 14% 감소할 것”이라며 “브렉시트가 영국 시장에서 외국기업의 경쟁 약화, 투자·혁신 감소,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이라고 관측했다. 케빈 데일리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도 보고서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영국 내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렉시트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EU탈퇴)를 넘어서는 세계 경제의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브렉시트 투표를 밀어붙이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요구도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제3당을 꿰찬 니콜라 스터전 SNP 당수는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투표가 시행된다면 스코틀랜드의 독립 찬반을 묻는 2차 주민투표에 정당성이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러시아 경제 불안도 세계 경제 지형을 뒤틀어놨다. 친유럽 성향의 서부인,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인으로 나뉘어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지난해 대규모 반정부·반러시아 시위가 일어났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 EU와 FTA 체결을 중단한 것이 발단이었다. 러시아는 이 시위의 배후에 서방이 있다고 판단, 지난해 3월 크림반도를 무력 합병했다.
이에 미국과 EU는 항의의 표시로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산 석유·가스 수입 금지 등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 수출길이 막히면서 루블화 가치가 작년 하반기 이후 50% 이상 폭락했고 러시아 경제는 뿌리째 뒤흔들렸다. 경제성장률은 2012년 3.4%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 0.6%로 추락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 4%를 기록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루블화 가치는 지난 2월 이후 약 40% 반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동부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이 아직까지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등 위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러시아 경제 위축은 언제든 재발할 우려가 남아 있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주권 갈등도 세계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양국의 영토 분쟁은 2010년 희토류 수출 금지 등 경제적 압박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본이 지난달 미국과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도발 수위를 한층 높였다.
중국은 러시아와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아시아 일대를 자국의 경제권으로 만들기 위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내놨다. 중국의 이 같은 대규모 경제협력 구상은 유라시아 경제개발의 주도권을 장악해 국제적으로 지위를 확대하기 위한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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