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격식 육군 대장이 지난 10일 0시 30분 '암성중독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격식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과 같은해 11월과 12월 연평도 포격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방과 황해도 일대를 담당하는 북한군 4군단장으로 활동하며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과 함께 이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일 체제 때부터 오랫동안 남북간 긴장상태가 상존하는 황해도 일대를 관장해온 야전사령관으로 이름을 떨쳤고 2007년 4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군 총참모장을 지냈다.
2012년 10월 인민무력부장에 올랐으며 2013년 5월 군 총참모장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해 9월까지 활동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김정일 시절의 원로 군인들이 대거 한직으로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세대교체의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군단장에 임명돼 지난해 1월 말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항공육전병 야간훈련을 참관하는 등 김정은 체제의 핵심 군부인물로 활약했다.
김격식이 사망했지만 이미 수뇌부 자리에서 물러난 만큼 북한 군부 내 권력 구도에 차질을 빚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57년 19세에 군에 입대한 김격식은 1980년대 말부터 군단장으로 일하면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다. 김일성훈장과 김정일훈장 등도 받았다.
노동신문은 김격식에 대해 소작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김일성 체제부터 현재까지 "혁명무력의 강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했다"고 평가했다.
김격식의 사촌동생인 김대식(74)도 대남 도발의 장본인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김대식은 1960년대부터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전신인 정찰국에서 근무했고 아웅산 사건 이듬해인 1984년께 정찰국 부국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10여년간 정찰국장으로 활동하며 각종 대남 도발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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