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린 성동조선해양에 대해 채권단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동조선해양 뿐만 아니다. STX조선해양, SPP조선 등 채권단이 관리에 돌입한 기업들 모두 ‘회생’이 아닌 ‘퇴출’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다. 도대체 채권단이 어떻게 기업들을 다뤘기에 이 지경이 났는지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이에 기업인들이 채권단의 ‘횡포’에 대해 입을 열고 있다. 적어도 해당 기업들에게 채권단은 ‘십자군’이 아니라 ‘저승사자’였다.
기업이 금융기관으로 돈을 빌릴 때에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담보를 회사의 자산으로 할 때에는 ‘인적담보’, 연대보증을 선 사람의 이름을 대고 빌릴 때에는 ‘인적담보’라 칭한다. 물적·인적담보로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을 때에는 채권단의 관리와 감독에 따라 회생절차를 받아가며 자금을 지원받는다. 즉, 채권단이 경영에 직접 개입해 담보권을 행사한다는 것으로, 공식명칭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시스템 담보’라고 말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 은행을 통해 인위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떨어뜨리도록 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시스템 담보의 핵심은 채권단이 경영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통상 담보물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운영에 관여 안하지만 시스템 담보는 담보권자가 직접 회사를 운영한다. ‘경영관리단’을 기업에 파견해 회사의 자금흐름을 통제한다. 성동조선해양이나 SPP조선, STX조선해양 등 채권단과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들에는 경영관리단이 파견돼 있다.
또한 채권단은 경영관리단과 별도로 회사의 빠른 회생을 위해 업계의 사정을 잘아는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회사의 경영을 위임한다.
이렇게 보니 경영의 책임은 전문경영인이 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스템 담보는 본질적으로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회사를 경영하는 게 아니다. 궁극의 책임은 담보물 운영자인 채권자가 져야 한다. 경영관리단이 자금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돈을 수혈하고, 전문경영인이 회사의 구조개편을 완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정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경영관리단·전문경영인 임기 고작 1년
먼저,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경영관리단장의 임기는 평균 1년이다. 부단장도 마찬가지다. 조선산업에서 1년이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배의 종류도 구분할 수 없는 기간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열심히 해도 모자란 시간에 경영관리단 사람들은 지방에 내려와 1년 후 올라가서 내가 뭐 맡을지 고민만 하고, 서울 본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일 생각만 한다더라. 그렇다고 서울 본점 사람들은 잘 알까? 그렇지 않다. 은행 부행장이나 전무 등은 조선소에 1년에 한 두 번 내려오고 끝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본점에선 자리에서 맘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내려보낸다. 그래서 마음에 들면 복직시켜 좋은 자리로 보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위한 관리는 애초부터 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시스템 담보가 잘 시행되려면 업계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관리단장으로 와서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고,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 끌고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성과를 내고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채권단은 비겁하게도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의 예를 들자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간 뒤 사장들은 임기를 1년도 못 채웠다. 채권단측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둘러댄다. 하지만 창업보다 더 어려운 일이 무너지려는 기업을 되살리는 일이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파리목숨보다 못하게 6개월이나 1년 만에 사장을 바꾼다면 정상적인 회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앉는다. 더군다나 수술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집도하고 있는 외과 의사에게 ‘너 나가’하고 딴 의사를 부르는 것은 환자와 환자 보호자에 대한 횡포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누구냐? 결국 채권단이다”고 주장했다.
◆저가수주 때문에 수주영업 중단하라고?
우리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일부 채권단이 성동조선해양 자금지원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이유중 하나가 회사가 저가수주를 했기 때문이라고 탓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경영관리단 감독 체제에서는 채권단의 승인 없이는 수주를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상선 가격은 철저히 발주사와 주수사를 양대 축으로 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는 시장가격으로 한다. 시장가격보다 1%라도 더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조선소는 세상에 없다. 돈을 만지는 채권단이 이런 단순한 상식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말 이후 현재까지 대표이사 사장 선임절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책임감을 갖고 일하려는 사장도 없고 채권단도 내 책임이 아니라며 손을 떼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은 돈을 투입하는 조건으로 성의를 보이라며 성동조선해양에 희망퇴직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채권단은 SPP조선에 대해서는 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3000억원을 투입해 주는 조건으로 2016년까지 수주영엽을 금지시킨 것이다. SPP조선을 비롯한 모든 조선소는 일감이 있건 없건 고정비용이 나간다. 공장과 크레인, 자동차 등의 감가상각비, 직원 월급 등이 고정비용에 속한다. 이러한 고정비용을 충당하려면 영업을 해서 1원이라도 이윤을 남겨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인데, 영업을 중단시켰다. 사실상 조선소 문을 닫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자기 잘못은 인정 안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을 정책을 잘못 세워 이렇게 죽이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선무당(채권단)이 칼춤 춰서 우리만 죽는다’는 말이 돌고 있다. 선무당이 너무 많다.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조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정부부처가 조선산업을 위해 손을 잡고 협력할 지에 대한 기대도 없다. 조선소는 조선소대로 쓰러지고 종사자들은 누가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청업체 다른 곳 선정했다고 사장 멱살 잡기도”
저가수주 이슈에 가려 있어 드러나지 있으나 채권단의 트집으로 조업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이틀 늦어지다가 인도시기를 놓칠 경우 조선사는 거액의 배상금을 선주사에게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CEO와 담당자의 업무영역인 협력업체 선정에까지 관여하는 월권도 서슴치 않고 있다.
과거 채권단 관리 조선사에 있다가 퇴직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것저것 (채권단이) 간섭하다보니 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협력업체도 아예 특정업체를 지정해 주기도 한다. 과거 대표이사를 맡았던 전문 경영인이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해 채권단 지정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와 일을 하겠다고 했더니 채권단측에서 낙하산으로 온 부사장이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사장의 멱살을 붙잡으며 대들었다. 이 사건은 당시 회사에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채권단이 회사에 현금이 없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돼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결국 채권단이 담보물 관리 책임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채권단은 교묘히 언론과 정부를 움직여 자신들의 책임을 숨기고 있다. 채권단의 무책임한 관행이 해결 안되면 우리나라 기업 회생절차는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으며, 조선산업은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스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뛰어들었다가 돈만 더 들어가니 던져버리겠다는 것은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니 돈을 더 넣어서 한 번 더 해 불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해야할 곳은 채권단이지 종업원이 엎드려 빌 일이 아니다. 채권단이 정말로 기업을 위한다면 자신의 책임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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