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가 못하는 일을 스포츠가 이룰 수 있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게 된 실마리도 탁구였지요. 이른바 ‘핑퐁 외교’ 아닙니까? 1990년대 후반 서로 적대시했던 미국과 이란이 대화를 재개하게 된 계기도 레슬링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동북아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 가로놓인 감정의 골을 메우는 데도 스포츠가 제격입니다.”
산업연구원에서 스포츠산업과 중국경제를 담당하는 김화섭 연구위원의 말이다.
한국·중국·일본·북한 등 동북아 4개국은 이웃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굴곡진 역사로 인해 지금도 서먹서먹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정치는 물론 경제 쪽에서도 일부를 제외하고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 경제공동체로 가기 위한 다리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중간에만, 그것도 지난해말에야 이뤄졌다.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보듯 그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웃나라들끼리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등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동북아 3국 또는 4국 국민들 사이에는 서로 반목하는 국민 정서가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다. 이를 해소하지 않고는 경제공동체를 형성할 수도 없고, 진정한 교류도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미-중간 탁구나 미-이란간 레슬링처럼, 동북아 4국의 화해와 친선을 도모하는데 스포츠가 앞장서야 할 때다. 먼저 ‘스포츠공동체’를 만들어 초석을 다진 다음, 경제공동체로 이행하면 한결 쉽지 않을까.
한·중·일·북한에서 공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스포츠는 축구다. 중국의 축구 열기는 잘 알려졌고, 한국과 일본은 전 종목에서 축구가 랭킹 1·2위를 다툴 정도이며, 북한은 구기 종목 가운데 축구의 기량이 가장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4국에서 축구 국제경기가 열리는 날엔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유럽 대륙은 매년 5, 6월엔 축구 열기로 가득찬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우승팀 윤곽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스페인·잉글랜드·독일·이탈리아 등 축구 강국의 팬들은 자국 리그 소속 팀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한다. 그들에겐 축구가 생활이요, 문화다.
동북아시아는 유럽에 비하면 축구 후발국이지만, 성장속도만큼은 유럽 못지않다. 4개국 인구만도 유럽 전체 인구의 두 배정도인 16억명을 넘는다.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G2로 발돋움했다. 유럽의 챔피언스리그같은 3국 또는 4국 축구리그를 창설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유럽처럼 남자프로축구 챔피언스리그를 창설할 경우 우선 한·중·일 3국으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에서는 아직 ‘프로축구’가 낯설기 때문이다. 3국은 12∼18개의 프로축구팀을 보유하고 있다. 기량은 한국·일본이 중국에 앞서지만, 그 격차는 날로 좁혀지고 있다. 3국 프로축구협회가 합의한 후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승인을 얻으면 출범시킬 수 있다. 2003∼2007년 3국은 각국 리그 챔피언들이 참가한 ‘A3 챔피언스컵’이라는 대회를 다섯 차례나 개최한 경험도 있다. 일정·스폰서 등의 문제는 머리를 맞대면 해결할 수 있다.
남자축구가 시기상조라면, 북한을 포함해 4국 여자축구리그를 먼저 출범시키는 것도 차선책이다. 일본·북한·중국의 여자축구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고, 한국은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박은선(로시얀카) 등 세계 톱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흥행성은 충분히 갖췄다.
스포츠의 장점은 그 의미가 ‘경기 결과’로만 끝나지 않는데 있다. 더욱 인접 국가들간 리그는 역내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토대가 될 수 있다. 반목과 불신으로 점철돼온 동북아의 차가운 현실에서 축구를 통한 스포츠공동체 창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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