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길(문물)은 고속철도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다. 철도가 경제와 문화, 관광 등은 물론 심지어는 인간의 삶의 형태까지 송두리째 뒤바꾸게 될 세상이 된 것이다.
지난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에 이어 지난달 2일 호남고속철도(KTX)가 전면 개통됐다. 이로써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이쯤 되면 ‘교통 혁명’이다.
새로운 문명이 태동하거나 혁신이 일어나면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상충되게 마련이다. 한 곳이 흥(興)하면 다른 한쪽은 멸(滅)하는 이치다. ‘창조’는 ‘파괴’가 전제될 때 가능하다. 과실(果實)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는 없는 법이다.
◇경제규모 취약한 전북, 반사이익 보다 ‘빨대현상' 우려
호남고속철도 개통은 분명 전북도민들의 간절한 염원이었지만 풀어야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특히 갈수록 인구유출이 심해지고 경제적으로 절대 취약한 전북으로서는 KTX 개통에 따른 반사이익 보다 속칭 ‘빨대현상(효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귀가 닳도록 들려오고 있다.
빨대현상이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나 경제력을 흡수하는 ‘대도시 집중현상’을 일컫는다. 실제로 1960년대 일본에서 고속철도 신칸센이 개통된 후 연계된 중소도시의 발전 기대감과 달리 도쿄와 오사카 양대 도시로 인력과 경제력이 집중됐다.
같은 논리로 고속철도 개통으로 인해 변변한 도시 하나 없고 경제여건이 열악한 전북으로서는 자칫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전북도내 호남KTX역은 익산과 정읍 두 군데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전북지역에서는 일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호남KTX 역사 신설에 관한 주장이 그것이다.
현재의 익산역은 그대로 둔 채 전라선 KTX역사로 활용하고, 익산과 전주·군산·김제·완주에다 부안에 이르기까지 도내 6개 시·군을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접경지에 호남선KTX 역사를 새롭게 설치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10여년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익산지역의 반발에다 비용 등을 고려해 기존 익산역을 새로 신·개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그렇게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졌던 역사 신설 문제가 새만금사업과 전북혁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는 등 주변 환경이 급변하면서 재차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전북지역 법조계와 정·재계, 사회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500며명이 참여한 (가칭) 'KTX혁신역사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결성돼 공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추진위는 창립선언 공식 기자회견에 이어 ‘KTX혁신역사 추진을 위한 희망콘서트’ 등까지 대대적으로 개최하며 신설 역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 뿐 아니다. 김제·완주·전주시의회가 잇따라 추진위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의안을 채택했고, 전북행정개혁시민연합 등도 이에 가세하며 추진위의 의견에 힘을 보태는 듯 했다.
그러나 호남KTX 본격 개통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 같은 주장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꼬리를 감췄다. 건의안이나 성명서 형식의 한바탕 주장만 있었지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호남KTX 개통 50여일이 지났다.
◇"서명 작업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행동 들어갈 것"
한동안 잠잠한 듯 했던 전북도내 호남선KTX 역사 신설 문제가 다시금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만금혁신역설립추진위원위(이하 추진위)’가 지난 12일부터 KTX 혁신역 신설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가면서 불씨가 재 점화되고 있다.(명칭을 기존 ‘KTX 혁신역’ 대신 전북지역 대표성을 지닌 ‘새만금혁신역’으로 바꿨음)
공동추진위원장(대표)을 맡은 김점동 변호사는 “지난 4월2일 호남KTX 본격 개통을 전후한 시점에서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것 같아 ‘혁신역’ 설치 문제를 잠시 보류시킨 상태였다”고 추진위 활동이 한동안 뜸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서명 작업이 1차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시 기자회견 등을 연 뒤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익산시의 반발이야 불 보듯 예견되는 일이다. 하지만 시대가 날로 급변하고, 주변 환경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새만금 개발이 본격화 되고, 전주·완주 외곽지역에 조성된 혁신도시에는 대단위 행정타운이 형성돼 있다. 올 연내 중앙단위 12개 공공기관이 모두 들어서고, 전주시내 대부분 공공기관이 밀집돼 있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호남선 KTX 역사의 접근성과 경제성, 발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해 볼 시점이라는 데 전북도민들 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공간에 역사가 들어서야 마땅하다는 것이 추진위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익산지역으로만 국한된 '호남선 KTX 익산역'을 전주·익산·군산·김제·완주·부안 등 도내 6개 시·군을 아우르는 접경지로 이전해 교통 효율성과 경제성을 배가시켜야 한다는 게 핵심 요지다.
◇5개 시·군 접경지대 김제 백구면 일원 사통팔달 교통요지
추진위는 구체적으로 김제 백구면 부용리 일원 쯤을 신설 역 적지 가운데 한 곳으로 꼽고 있다. 이곳은 KTX호남선과 전라선이 동시 교차하고, 전주~군산 산업도로와 익산~김제 자동차전용도로가 지근거리에 있는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 꼽히고 있다.
이 지역은 전북혁신도시, 익산시청, 김제시와 약 9km, 군산시청과 완주 봉동까지 약 20여분 거리에 있어 전주·익산·군산·김제·완주를 동시 아우를 수 있다. 머지않아 혁신도시와 이곳 전주~군산 산업도로를 연결하는 직선도로도 신설될 예정이다. 외지인이 상당수인 혁신도시 공무원들의 접근성도 한결 용이해 진다. 부안과는 약 27km 지점으로 포괄적으로는 군산·부안 새만금 일원까지도 연계가 가능하다.
복합환승센터와 대형 쇼핑몰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현 익산역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KTX 역사의 경제성 확보 차원에서도 혁신역사를 새로 건립하는 게 생산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현 익산역은 전라선 역사로 활용하고, 새 KTX 역사는 호남선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KTX가 30만 익산시민만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주 등 전북 5~6개 시·군 140만명 이상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새 KTX 역사에 새만금과 혁신도시, 국가식품클러스터, 대학 등을 활용하는 한편 컨벤션센터, 호텔, 한방병원, 대형쇼핑몰, 물류센터 등과 같은 종합시설 개발을 통해 새로운 지방경제 활성화 거점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추진위는 역사 신설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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