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초대석] 서울예술재단 설립한 표미선 이사장 "부담없이 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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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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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재 10억원 출연, 작가-후원자 연결 플랫폼 "예술 후원자가 되는 기쁨을 드릴 것"

[비영리법인 서울예술재단을 설립한 표미선 이사장이 "월 1만원의 회비로 전 국민을 ‘패트런(Patron·예술애호가)’으로 만들어 부유층의 향유 문화로 인식돼온 미술판 파이를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화랑에서 아무리 전시를 많이 해도 시장이 커지지 않아 고민했죠. 결국 고객수의 저변이 넓혀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고 판단해 재단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표미선 전 화랑협회장(66)이 서울예술재단 이사장으로 변신했다. 15,16대 화랑협회장 (2009∼2014)으로 6년간의 왕성한 활동으로 지칠만도 한데 그는 '쉼 보다는 전진'을 택했다.

 최근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옆에 위치한 서울예술재단에서 만난 표 이사장은 "워낙 일복이 많고, 일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나는 스타일"이라며 "요즘엔 할일이 많아 더 신나고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4월 7일 개소한 서울예술재단은 비영리법인으로 표 이사장이 사재 10억원을 출연했다. 척박한 국내 미술 환경을 개선하고 미술향유 인구 확산을 위해서다.

 창단식과 함께 첫 행사로 연 ‘포트폴리오 박람회’는 미술계 화제가 됐다. 이 행사에는 172명의 작가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자신의 작품과 포트폴리오를 들고온 작가들은 현장에서 바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밤 9시 넘게 까지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27명이 선정됐다. 이날 뽑힌 작품은 현재 서울예술재단에서 전시중이다. 오는 30일엔 평면과 입체 부문에서 최우수상 2명을 뽑아 각 상금 1000만원을 수여한다. 유능한 신진작가를 발굴, 꾸준한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다.

 "34년간 화랑(표갤러리)을 해오면서 젊은 작가들과도 참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작업을 많이 못하더라고요. 작품수가 적다고 탓할일만은 아니었어요."

 왜 그럴까. "작품을 보여줄 공간도 없고 봐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의욕이 점점 떨어지는 거예요. 이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들과 컬렉터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제가 생각한 초안을 설명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라고요.”

 표 이사장이 재단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이 생각은 지난해 서울역에서 확고해졌다. 광주비엔날레 행사를 다녀오던 중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오르는데 누군가 홱 도망치듯 뛰어갔다. 돌아보니 그의 손엔 스케치북이 들려있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거리에서 방황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눈으로 본건 처음이었어요." 가장인 작가들은 집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했다. 교수도 안되고, 인기 작가도 아니고, 학원 강사도 못하는 '남편이자 아빠'는 힘을 잃어 집에서조차 편히 있지도 못한다는 것.  

 "우리 미술시장에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는 그는 34년간 화랑일을 하면서 세상에서 받은 것을 환원하겠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화상(畵商)으로서의 노하우를 살려 사회 공헌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작가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며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미술계 에너자이저'이지만 화랑협회장 이후의 삶을 고민했다고 한다. 미술관이나 기업에서 이사장 영입 제안도 있었지만 고사했다.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수 있을까.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를 화두로 삼는 날이 많아지던 중 그는 벼락처럼 “그럼 니가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단 시작해볼까.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일은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아닌가"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인맥'이 힘을 발휘했다. 재단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600평짜리 재단 건물도 쉽게 구해졌다. "미술판 일을 벌인다는 소문에 은행 지점장들이 다리를 놓아줬고, 대사관에서 임대를 해달라는 것도 마다해 4년간 비워있던 건물인데 제게 선뜻 내줬습니다." 화이트큐브처럼 하얗게 칠해진 건물은 3층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했다. 5년간 임대했다.  잘 가꿔진 초록색 정원과 아담한 미니 풀장까지 갖춰 미술전시는 물론 오페라 콘서트등 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국회의원)은 재단 1호 발기인이다. 또 소설가 조정래씨와 은행권과 대기업 임원들이 표이사장의 행보에 팔을 걷어부치고 힘을 실어줬다.  김&장에서는 무료로 법률자문을 해줬고 흥국생명에서는 작품 도난 운송 보험분야에 도움을 제공했다. "돈도 별로 없어서 걱정했는데, 때마침 단색화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수장고에 오랫동안 있던 옛날 작품을 여럿 팔 수 있었어요. 호호호”

  서울예술재단의 핵심은 '미술인의 사랑방' 이다.  '작가와 평론가와 큐레이터와 컬렉터의 아지트'로 미술인이면 누구나 방문을 환영한다.  젊은 작가들이 재기 넘치는 작품을 걸어놓으면 평론가들이 와서 보고 글을 쓰고, 큐레이터들이 전시 기획을 꾸며볼 수도 있다. 컬렉터들은 작가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빌리거나 살 수 있다. 포트폴리오박람회에 이어 '큐레이터, 평론가 박람회'도 열 계획이다.
 
[표미선 이사장이 재단 정원에 설치한 중국 작가 첸 웬링의 붉은 조각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재단은 일단 작가와 후원자를 잇는 ‘아트 플랫폼’으로서 역할에 충실한다는 목표다. 십시일반의 후원자를 모집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8000원짜리 전시 팸플릿도 공짜로 얻으면 그냥 버리지만, 제 돈 주고 산 건 500원 엽서그림도 보관하지 않느냐”며 표 이사장은 “뭔가 개입이 돼야 미술에 대한 애정도 생긴다”고 말했다.

 "매달 최저 1만원의 회비를 내면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어요. 메디치 가문이 예술적인 상류층의 상징이었다면, 서울예술재단은 온 국민이 예술 후원자가 되는 기쁨을 드린다는 컨셉트입니다. 부담 없이 와보세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표 이사장이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후원자 신청서였다. 월 1만원 일반 후원, 월 5만원 프리미엄 후원을 선택해야 했다. "
작은 힘 이지만 누구라도 예술가를 후원하고 지지할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게 목표에요. 후원자들의 애정과 지원은 창작의 절대적 동기가 됩니다. 만원만 주세요. 하하~" (02)730-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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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미선 이사장=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소녀였다. 정외과를 가려고 했지만 선생님이 “성적이 안된다”면서 원서를 안 써줬다. 영남대 응용미술과를 갔다. 성적 때문에 바꾼 전공이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전부가 됐다. 

 대학 졸업 무렵 일본에서 열린 도안 디자인 대회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대상을 받았다. 도안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 기모노에 들어가는 꽃 문양 등을 도안해준 덕에 20대에 큰돈을 만졌다. 돈이 생길 때마다 미술작품을 사 모았다. 제법 작품이 모였다. 아예 화랑을 열었다. 표갤러리의 시작인 서울 여의도 미술관이었다. 1981년의 일이다. 서른한 살에 겁도 없이 미술시장에 뛰어들어 34년째다.

  작가들을 발굴하고 기획전을 열고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그는 갤러리스트로 활약했다. 국내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 이태원 표갤러리, 청담동 표갤러리 사우스에 이어 중국 지우창, 미국 로스앤젤레스 표갤러리 분점 등에 갤러리를 운영중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 150여곳 화랑을 대표하는 화랑협회장을 역임하며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미술품 감정, 국제미술전 참가 지원사업을 활성화시켰다.  반면 2009년 회장으로 나설때 “중국 베이징의 ‘798’과 같은 예술특구를 양평에 만들겠다”는 공약은 불발됐다.

  표미선 이사장은 "죽을 때까지 미술 현장에서 일할 것"이라는 그는 "미술에 대한 일은 박사다. 작가와 컬렉터가 행복한 미술판을 키우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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