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이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감회가 남다를 오승욱 감독을 지난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귀하디 귀한 복귀작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았으니 겹경사다. 소감부터 물었다.
“칸에서 잘 놀지도 못했어요. 큰 영화제에서 관심을 가져 주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기분이 좋았죠. 떨리기도 했고요. 제 영화 얘기를 해야하는데 잘 못하겠더라고요. 남의 영화 얘기는 탱크처럼 잘할 수 있는데 말이죠, 하하.”
첫 대화부터 호쾌한 웃음이 터졌다. 앞서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를 통해 오승욱 감독의 입담이 보통은 넘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독대한 자리에서의 오 감독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이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무뢰한이 되지 않고서는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세계에서, 파멸로 치달으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무엇인지, 그런 존재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예의는 무엇인가에 고심하게 됐어요. 그에 대한 답이 영화 '무뢰한'입니다". 오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다.
‘무뢰한’의 시나리오는 2005년쯤 초고가 완성됐다. 스스로를 더디고 느린 편이라고 설명한 오 감독은 영화 제작이 무산될 때마다 다음 시나리오를 쓰고, 준비하기를 반복했다. 1997년 ‘초록물고기’(감독 이창동),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의 각본을 쓰고 1999년 ‘이재수의 난’(감독 박광수)에서 각색을 맡았던 오승욱 감독은 직접 쓴 ‘킬리만자로’로 연출 데뷔를 했다. ‘킬리만자로’는 악질 형사인 형 해식(박신양)이 깡패인 쌍둥이 동생이 죽자 고향에 내려가 동생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물간 깡패 번개(안성기)는 해식을 끔찍이 챙기고 보살핀다.
‘킬리만자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뢰한’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 어떻게 몰락하는지,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지에 대한 고민은 '무뢰한'에서 심화됐다. ‘킬리만자로’의 안성기 역을 전도연이, 박신양은 김남길이 연기한 것이라고 오승욱 감독은 말했다.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이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전도연이 처음부터 흔쾌히 수락한 것은 아니었다.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는 “모든 여배우한테 거절 당할 것이라는 전제로 캐스팅을 하자”고 말했다. 텐프로 출신에, 남자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는 김혜경을 맡겠다는 여배우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톱 여배우한테 보내자는 생각에 전도연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전도연은 오승욱 감독에게 “매우 현실적인, 판타지적 장면이 하나도 없는 게 너무 좋은 시나리오”라면서 김혜경 역을 수락했다.
캐스팅 초기 전도연과 배우 이정재의 조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하녀’ 이후 두 톱 배우의 조우에 대한 관심은 컸다. 그러나 ‘빅매치’ 촬영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한 이정재는 영화 시작 전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전도연은 그런 상황을 먼저 알고 오승욱 감독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촬영장소 헌팅(섭외)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너무 가슴아파 하시지 말고,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고요. 그리고 나서 제작사로부터 이정재 씨가 하차했다는 소식을 접했죠. 그날 바로 입에 술을 부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전도연 씨가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술을 잔뜩 사들고요. ‘얼른 대책을 세우자. 어떤 배우가 좋겠느냐’면서요. 한재덕 대표, 국수란 제작PD랑 다 같이 회의를 했죠. 정말 대단한 배우 아닙니까?”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이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시나리오를 보낸 후 우선 만나 보자는 생각에 김남길과 미팅을 가졌다. 김남길은 ‘무뢰한’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던 ‘의도’를 정확하게 분석해 왔고, 그렇게 캐스팅이 완료됐다.
“박광수 감독님은 제가 연출부였을 때부터 존경하고 신뢰하는 감독님 중 한 분이시죠. 김남길 얘기를 했더니 ‘신선하다.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허진호 감독도 동료로서 존중하는데 ‘김남길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무뢰한’에 흥미가 간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김남길한테 그랬어요. ‘나에게 정재곤은 바로 너야. 너를 보면 정재곤이 보여’라고요. 결도 좋았고요. 서로 죽도 잘 맞았어요. 제가 ‘OK’를 하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하더라고요. ‘감독님은 내가 연기 안 한 것만 OK야’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도 잊지 않았죠, 하하. 마지막 장면은 비가 오는 인천이 배경이었어요. 그런데 김남길이 몸살감기에 걸려 왔더라고요. ‘배우는 배우구나. 김남길은 지금 정재곤이구나’라고 느꼈죠.”
그렇게 라스트신까지 끝낸 ‘무뢰한’.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으로 인간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 본성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오는 27일 청소년관람불가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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