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여름의 판타지아’ 김새벽 “나와 닮은 부분, 내가 인정하는 모습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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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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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제가 나온 영화를 잘 못 보겠어요. 그런데 이번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어느 정도 볼 수 있겠더라고요. 저랑 닮은 부분, 제가 인정하는 모습들이 나와서 그런 것 같아요.”

해사하게 웃는 얼굴, 조곤조곤 말을 덧붙이는 모습은 영락없는 혜정이다. 일본 고조 역전 안내서에서 유스케(이와세 료)가 단박에 반한 그 모습, 그대로. 작은 행동, 작은 목소리, 미세한 움직임은 상대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감독 장건재·제작 모쿠슈라 나라국제영화제·배급사 인디스토리) 개봉 전인 5일 아주경제와 만난 배우 김새벽은 ‘판타지아’ 같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한 장밖에 없는 대본을 가지고 덜컥 일본에 가게 됐어요. 어떤 영화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요(웃음). 정말 감독님에 대한 신뢰만 하고 간 거였죠. 감독님이 정말 말씀을 잘하시거든요. 인간적이고 솔직하세요. 그 말발에 넘어간 것 같아요.”

말을 마치면서 쑥스러운 듯 웃는다. “웬만한 신뢰가 아니면 따라가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촬영 전 딱 4번 본 사이”라고 한다. 말을 얼마나 잘하기에 이 여배우를 순순히 일본까지 데려간 걸까. “감독님의 결정적 한마디”를 묻자 김새벽은 잠시간 고민한다.

“‘새벽 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 말이 정말 고마웠어요. 보통은 전작의 모습을 보고 캐스팅을 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때까지 본 적 없는 제 모습을 담고 싶다는 말이 좋았어요. ‘실제 너에게 느꼈던 느낌 자체를 담고 싶다’는 말에 ‘아, 이 영화를 찍어야겠다’ 싶었죠.”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 나라현 고조시를 배경으로 영화감독 태훈(임형욱)과 조감독 미정(김새벽), 그리고 고조시에 정착한 일본 청년 유스케와 홀로 여행을 온 혜정(김새벽)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엮은 작품이다.

극 중 김새벽은 조감독 미정과 여행객 혜정이라는 두 인물을 연기했다. 미정은 태훈의 통역을 도맡을 정도로 능숙한 일본어 실력을 선보였고, 혜정은 서툰 일본어로 유스케와 대화를 이어나갈 정도였다. 1부와 2부의 일본어만큼이나 두 인물은 다른 성향을 가진 캐릭터였다.

“실제로는 2부 ‘벚꽃우물’보다 일본어를 더 못해요. 1부의 경우에는 대사가 주어졌으니 열심히 외우면 됐었거든요. 통역하시는 분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뉘앙스나 이런 걸 많이 잡아주시고 전문적인 느낌이 나도록 연기했죠. 그런데 2부는 역할 자체가 일본어를 잘하는 역할이 아니니까요. 부담은 덜 했어요. 감독님도 2부의 대본을 만들 때 ‘새벽 씨 이런 말 들어봤어요?’하고 물어보시곤 제가 모른다고 하면 더 쉬운 거로 바꿔주셨어요. 진짜 여행객 느낌을 주려고 하신 거죠. 외국어를 들을 때 특권은 안 듣고 싶은 말은 안 들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웃음). 거짓말로 맞장구칠 때도 있고…. 모르는 수준으로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세밀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외국어로 감정을 전달하기가 힘들었겠다”고 말하자 김새벽은 “어차피 대사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잖아요. 외워서 하는 건 똑같으니까 다르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말보다 감정을 전달하는 게 힘들었죠. 감독님이 절대 한국어를 쓰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제가 어떤 걸 설명하고 싶은데 일본어가 부족하니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어물쩍 넘기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미묘한 관계를 그리다 보니, 제가 일본어를 잘했으면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혜정과 유스케의 사실적인 감정, 미묘한 관계를 포착하기 위해 장건재 감독은 두 사람의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고자 했다. 예컨대 ‘컵’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혜정이 컵을 설명하기 위해 30분간 허둥지둥거린다고 해도, 장 감독은 그 긴 시간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냈다. “일본어를 조금 더 잘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는 김새벽은 “그만큼 즉흥적으로 그려진 것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으로 2부 엔딩을 1부때 찍은 것이라서, 결말은 정해져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엔딩의 감정을 만들어낸 거라서. 목표지점이 있으니 기본 툴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대사나 감정, 행동들은 리허설 때 만든 게 많았어요. 감독님이나 이와세 료가 ‘이럴 때 혜정은 어떨 것 같아요?’하고 자주 물어보곤 했어요. 2부의 혜정의 행동은 당시 제가 느끼는, 혜정이라면 이랬을 것 같다는 것들이 만들어낸 거죠.”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1부 대본만 보고 덜컥 일본으로 떠났던 김새벽은, 일본에서 2부 ‘벚꽃우물’의 혜정까지 연기하게 됐다. 형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벚꽃우물’의 혜정은 김새벽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점차 구색을 갖추게 됐다. 그래서일까, 혜정은 김새벽과 닮은 부분들이 많았다.

“혜정이랑 제가 제일 닮은 부분은…. 호의를 보이면 거절을 잘 못 한다는 거요(웃음). 유스케와 처음 만났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또 극 중 남자친구와 전화로 싸우는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도 감독님이 ‘무슨 얘길 들었을 때 가장 화가 나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쓸모없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날 것 같은 거예요. 그 당시에 실제로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홀로 연기에 대해 고민할 때. 김새벽은 혜정이라는 인물을 만났고 “여러모로 공감하며 연기하는 듯, 아닌 듯”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촬영할 때 스태프들까지 다 모여서 장면이나, 대사에 대해 상의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여자 스태프들의 반응이 제일 갈렸던 게 혜정이 배우라는 사실을 밝히느냐, 아니냐였어요. 한 스태프는 ‘배우라고 말하면 정말 화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밝히고 싶은 쪽이었거든요. 혜정이 제 색깔이 많이 묻어있는 캐릭터라서, 그런 반응들이 왠지 제 성향이 부정당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기했던 것도 있던 것 같아요. 혜정이라는 인물로 설득시키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일본 고조라는 낯선 땅에서 벌어진 4주간의 판타지아. 스태프, 배우라는 구분 없이 “한 세탁기를 쓰며” 동고동락했고, 스스로와 가장 가까운 혜정을 연기하면서 김새벽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개봉을 앞두고 조금은 시원한, 그리고 섭섭한 기색이 가득했던 그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배시시 웃는다.

“오래 마음의 준비를 했었고, 배급사 분들이며 스태프들을 만났더니…. 아직 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계속 긴장하고 있다가 탁 맥이 풀린 듯한 기분도 들고요. 언제쯤 실감 나게 될까요? 일정이 다 끝나야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개봉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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