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납세자의 권리를 과세권자의 권리만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은 16일 저금리 시대에 맞지 않게 높은 가산세율과 제한적인 가산세 감면을 문제로 지적하고, 납세자가 부담하는 가산세 수준을 국가가 부담하는 환급가산금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가산세 부담을 낮추면 납세자의 자진신고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잘못을 자진신고 했을 때의 패널티가 작아져 납세자가 추후 적발될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 스스로 밝히는 편을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전경련은 납세자에게 불리한 다섯가지 가산세 제도를 제시하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납부 불성실 가산세율은 그대로, 환급가산금 이자율은 감소
전경련에 따르면, 납부불성실 가산세율(세금을 안냈거나 적게 낸 납세자에게 부과되는 가산세)은 지난 2003년 ‘1일 1만분의 5’에서 ‘1일 1만분의 3’으로 낮아진 이래 13년째 요지부동이다. 이는 연 11% 수준(=0.03%☓365일)이며, 세무조사까지 고려하면 납세자는 최대 55%(=연 11%☓5년)의 세율을 부담하게 된다.
기업들은 가산세에 ‘벌금’의 성격이 있다 하더라도, 저금리 시대에 지금의 세율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한다. A사 관계자는 “정부가 납세자에게 돌려주는 국세환급가산금(납세자가 국세를 정상보다 많이 냈을 경우 정부로 돌려받을 수 있는 환급액에 법적이자 만큼을 더한 금액)의 이자율은 매년 낮추면서 가산세율은 조정하지 않아 둘 사이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환급가산금 이율은 예금이자율에 연동되어 2012년 이후 줄곧 떨어지고 있다.
◆돌려받을 기회는 많아졌지만 금액은 오히려 줄어
지난해 국세기본법이 개정되어, 과다납부 세액에 대한 환급신청 기한(경정청구 기한)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 세금을 돌려받을 기회가 많아졌지만, 정작 납세자들은 돌려받는 금액이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2월, 정부가 ‘세금을 낸 날’(국세납부일)이 아닌 ‘환급을 신청한 날’(경정청구일)부터 환급가산금을 계산하도록 시행령을 고쳤기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납세자에게는 납부기한이 끝나자마자 가산세를 부과하면서, 환급할 때 주는 가산금은 왜 납부기한 직후부터 계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가산세 물어야
C사는 2010년도 1기분 부가가치세 3000만원을 과세하겠다는 세무조사 결과에 대해 작년말 과세전적부심사를 청구했다. 법에 따르면 과세관청은 청구일로부터 30일 내에 심사결과를 통지해야 하나, 실제로는 90일이 지나서야 불채택(청구 이유없음) 통지를 했다. 이로 인해 C사는 납부불성실 가산세 2달분(=90일-30일)을 더 내게 되었다. 이 경우 현행법은 2달치 가산세의 절반을 감면해주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C사 관계자는 “심사결정 지연은 전적으로 과세관청의 잘못인데, 그로 인해 기업이 가산세를 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국세는 6개월 늦게 신고해도 가산세 감면, 지방세는 1개월
법정기한 이후에 세금을 신고할 경우 국세기본법은 ‘기한 후 6개월’ 신고분까지 무신고가산세의 일부를 감면해주지만 지방세기본법은 ‘기한 후 1개월’ 신고분까지만 감면해주고 있다.
D사 관계자는 “예컨대 법인세와 법인지방소득세는 같은 과세표준을 근거로 산출되는데, 전자는 국세라는 이유로 기한 후 6개월까지, 후자는 지방세라는 이유로 1개월까지만 가산세를 감면받고 있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양자가 달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신고기한을 놓친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자진신고를 결정할 때 ‘가산세 감면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이 경우 지방세의 가산세 감면을 국세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경련은 주장했다.
◆체납-환급 동시발생시 가산세만 걷고, 환급가산금은?
E사는 지난 2012년 법인세액 신고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10억원을 적용받는 대신, 공제에 따른 농어촌특별세 2억원을 납부했다. 그런데 다음해 세무조사에서 공제요건(상시근로자수 유지)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당 공제가 취소되었고, 공제로 인해 납부했던 농어촌특별세는 돌려받게 되었다. 이 때 정부는 취소된 공제액에 대해서는 납부불성실 가산세를 물리면서, 농어촌특별세 환급금에 대해서는 환급가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E사는 “미납세액과 환급금이 동시에 발생한 상황에서 납세자 의무만 강조하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산세 부담을 낮추면 납세자의 자발적 협조가 높아져 별도의 감시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박윤준 선진회계법인 고문(전 국세청 차장)은 “문제의 핵심은 납세자가 스스로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신고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 납세자가 가산세 부담이 적거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기업들이 현행 가산세 제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송원근 경제본부장은 “기업들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납세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할 수 있다”며 “고의 탈루에 대해서는 엄정한 제재가 가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단순 업무실수의 경우에는 가산세 부담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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