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태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우울한 생일'을 맞이하게 됐다. 23일은 이 부회장의 48번째 생일이다. 하지만 생일선물은 고사하고 최근 삼성그룹 안팎으로 우환이 적지않아 이 부회장은 예년과는 사뭇 다른 생일을 맞이하는 분위기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로 인해 삼성그룹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이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사치나 다름이 없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고 국가적 재앙이 되어버린 메르스의 진원지로는 삼성서울병원을 지목하고 있는 등 예기치 않은 악재들을 처리하는게 우선이다. 이달 말 한화그룹으로의 인수작업이 완료되는 삼성테크윈 등과의 막판 노사 진통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 '명분'이 없다 vs 리더의 진면목 보일 때
업계에서는 최근 나타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성그룹 전체의 위기라고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다잡기에도 여건이 여의치 않다. 이 부회장이 지니고 있는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근 취임한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의 운영주체이기 하지만 삼성그룹 차원에서 먼저 해결에 나서야했다는 것. 물론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만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엘리엇과 공방전에도 이 부회장이 나설 뚜렷한 명분은 없는 상태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3%를 보유하고 있으나 삼성물산 지분은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이렇다보니 우군을 얻기 위한 주주 설득도 쉽지 않다. 이 부회장이 주주 설득에 나서려면 일단 합병이 계획대로 이뤄진 다음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그럼에도 이 부회장에게 오히려 지금이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우고 진정한 리더로써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 역시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다 바꾸라”는 신경영을 통해 IMF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기업으로 삼성이 도약할 수 있게 하는 리더의 역할을 했다.
물론 이 부회장에게 나타난 악재들은 다소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이름 앞에 '위기'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을 해결해야 할 이는 분명히 이 부회장의 역할이라는 목소리다.
◇ 그럼에도 '전면'으로 나서야
이 부회장은 지난 18일 삼성서울병원 내 민관합동메르스대책본부에 직접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가 확산돼 죄송하다. 최대한 사태를 빨리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병원 현장을 찾은 것은 사실상의 그룹 수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삼성전자는 이번 주로 예정된 '상반기 글로벌 전략 협의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매년 개최됐던 협의회를 연기한 것은 2008년 삼성특검 때 이후 7년 만이다. 삼성은 중국 등 해외 경쟁업체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이번 협의회에서 어떤 의제가 설정될 지 재계의 관심이 컸다.
더욱이 삼성전자가 지난해 하반기 부진을 털고 올해 1분기 반도체 등에서 실적 개선 조짐을 보인 가운데 2분기의 실적이 중요한 상황이라 향후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예정됐던 협의회가 취소된 것에 대해 안팎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이번 전략회의가 취소된 것은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목소리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회의가 미뤄진 것은 메르스 여파로 인한 것도 있지만 경영진들로 하여금 조금 더 현장에 신경을 쓰게하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이재용 부회장 시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며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어떤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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