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이 건드린 해묵은 인종 문제가 미국 대선 정국을 뒤흔들 기세다. 150년 전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지지한 남부연합의 깃발도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공화·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인종 문제의 쟁점화를 정면으로 껴안으며 가장 강경하게 제 뜻을 밝힌 후보는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주리주 플로리슨트시의 흑인 교회 크라이스트 더킹 처치에서 열린 ‘타운미팅(Town Meeting·마을회의)’ 연설에서 “남부연합기는 과거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현재와 미래에서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남부연합기 사용 금지법안 발의 결정을 지지하며 자신도 오랫동안 남부기를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지난 20일 샌프란시스코 시장 협의회 연설에서도 흑인 교회 총격 사건에 대해 “이런 비극을 단일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유혹이 있다”며 “그러나 아직 인종 문제가 미국 사회에 깊은 단층선으로 남아 있고 수백만 명의 흑인이 일상 삶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무소속이면서 민주당 후보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진보적 성향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도 “미국의 얼룩진 인종 역사의 잔재인 만큼 남부연합기는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마틴 오맬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더욱 강력한 총기사용 규제를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 주자들은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층을 의식한 탓이다. 특히 '남부연합기 폐지' 주장에 나설 경우 이를 가문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생각하는 남부 일부 계층의 감정을 자극해 지지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공화당의 유력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범행을 저지른 딜런 루프가 ‘인종주의자’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하지만 비난이 일자 “권총 난사가 인종적인 이유로 저질러졌다”고 말을 고쳐야 했다. 헤일리 주지사의 결정에 대해서도 명확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공화당 대선후보이자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지역구를 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남부연합기는 우리 일부이기도 하다”며 퇴출 여부에 관한 의견을 보류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도 “외부인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에게 필요하지 않다”며 “깃발에서 인종차별과 노예제가 아닌 조상의 희생과 남부 주의 전통을 기억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전략가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 전 백악관 선임 고문은 워싱턴포스트(WP)에 “대선 레이스는 이런 예기치 못한 도덕적 시험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승리는 결국 그것에 맞서 감당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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