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중국 군사력 대해부] 한·중 갈등과 대결의 20년 종식…군사협력 격상 모색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5-06-29 01: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다시 읽는 한중국방교류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지난 2월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이 방한했다.  중국 국방부 부장(장관)의 방한은 2006년 차오강촨(曹剛川) 국방부장 방한 이후 9년 만으로 시진핑 정부의 양국 간 군사협력에 대한 기본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이후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군사 교류를 증진시켜왔고, 군사협력으로의 발전을 모색해 왔다.

비록 양국 모두 한미동맹이나 북중동맹과 같은 군사관계 발전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상호인식하고 있으나, 군사관계 발전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그리고 중국의 안보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교류를 위한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서상민 국민대 HK연구교수는 "향후 양국의 군사협력 격상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장기적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전략적 포석을 두고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 양국간 군사협력을 제도화하는 단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픽= 김효곤 기자]

◆ 한·중, 군사교류로 거리좁히기

국가와 국가 관계에서 군사협력은 나라 간 가깝고 먼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중 관계는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가까워진 반면, 군사적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아직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중 간 군사적 협력이 진전되지 못한 배경으로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꼽았다.

6.25 전쟁 이후 갈등과 대결의 관계로 시작된 한중 군사관계는 남북 분단이 지속되면서 군사적 대결의 얽힌 매듭을 제대로 풀지 못했고 그 배경에는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이 있다.

1961년 7월 북·중 간 맺은 이 조약은 어느 한 쪽이 무력침공이나 개전상태에 놓이게 되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한중 수교 시작은 '한중 국방교류'

한국과 중국 역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양국간 군사교류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이 한중 수교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중국을 방문할 당시, 함께 대동한 인사는 다름아닌 한국군의 합참의장이었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필섭 장군의 방중으로 한중수교와 더불어 한중 간의 첫 군사 교류가 시작된 셈이다.

이후 1993년 12월 한국은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 무관부를 설치했고 이듬해인 1994년 3월 중국이 주한중국대사관 무관부를 설치하면서 양국군은 공식적 대화 창구를 갖게 됐다.

이듬해인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중국을 방문 할 때에도 우리의 합참의장이 수행하면서 실무적 군 인사교류가 정식으로 개시됐다.

◆ '햇볕정책'으로 고위급 인사 교류 개막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따라 한국의 대북정책이 화해협력 방향으로 전환된다. 이를 계기로 김대중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 이후 한중 간 고위급 군인사 교류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99년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방중하고, 2000년에 츠하오톈(遲浩田)이 중국 국방부 부장으로서 최초로 한국을 방문 하는 등 양국 간 고위급 군인사 교류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이에 대해 서상민 교수는 "당시 이러한 중국의 태도변화는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북한과의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국과의 군사교류를 통해 양국간 새로운 군사관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해석했다.

◆21세기,  '교류단계' 넘어 '협력단계'로 발전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한국 고위 군인사들의 중국방문 빈도는 눈에 띄게 늘어난다.  2001년에는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이, 2002년에는 공군총장과 국방대총장, 국방부 차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특히 2001년 한국의 을지문덕함이 상하이를 방문, 한국 해군이 최초로 중국본토를 밟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한중간 군사교류 진전을 가로 막는 계기로 작용했다. 

2013년까지 한국의 국방부 장관은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지만, 중국 국방부 부장은 단 한차례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2009년 중국군 총참모장, 2011년 부총참모장, 2013년 부총참모장이 방한 것에 그쳤다.

이에 대해 국민대 연구팀은 "한반도 주변 안보위기 고조되면서 양국 군간 교류와 협력의 분위기 보다는 갈등과 대결의 분위기가 압도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 시기 한중 군사관계에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2011년 7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중국방부 장관회담에서 고위급 국방 전략대화 신설에 합의한 것이라고 국민대 교수팀은 꼽았다.

한중 모두 군사적 교류와 협력에 대한 기대와 필요성이 있었던 만큼 현재 국방전략대화는 매년 개최되면서 양국 간의 군사관계 발전의 청사진을 만들어 가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