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그리스가 9일(현지시간)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 개편, 국방비 감소 등을 담은 급진적인 개혁안을 국제 채권단에 제출했다. 이번 긴축안은 지난달 채권단이 내놓은 협상안보다 강도가 세기 때문에 그리스 의회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리스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승인한 개혁안을 제출 요구 마감 시한인 9일 자정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채권단에 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도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이 그리스의 개혁안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그리스의 재정 지출 삭감 규모에 대해 현지 일간 카티메리니는 2년간 120억유로(약 15조1000억원)로, 영국 일간 가디언은 130억유로(약 16조2000억원)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달 말 채권단과 큰 틀에서 합의한 개혁안의 규모(79억유로·9조9000억원)보다 40억유로(약 5조원) 이상 많다. 경제성장률 전망이 낮아져 재정수입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재정수지 개선 규모도 종전보다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우선 현재 연금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0.25∼0.5%, 내년 GDP의 1%에 해당하는 절감을 이룰 수 있는 연금 개혁안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조기 퇴직에 불이익을 주고, 2022년까지 법정 은퇴연령을 67세(40년 근속했을 경우에는 62세)로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사회연대보조제도(EKAS)에 따라 저소득 노령자에게 지급하던 추가 연금을 2019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이 가운데 소득 상위 20%에 대한 지급은 내년 3월부터 당장 폐지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2016년 말까지 섬 지역에 대한 부가가치세(VAT) 인하를 폐지하고 음식점에 대한 부가세율을 23%로 단일화하는 등의 부가세 개편 방안도 마련했다. 법인세를 종전 26%에서 28%로 상향하고 TV 광고에 대한 세금을 새로 도입하는 등의 증세 조치와 국방비 지출을 올해 1억유로, 내년 2억유로 줄이는 등의 예산 절감 조치 등도 담겼다.
블룸버그 통신은 “3년간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한 그리스의 이번 제안은 지난달 26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안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오는 10일 그리스 의회 표결 절차가 문제다. 그리스 연립정부의 다수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내 강경파인 좌파연대(Left Platform) 측은 추가 긴축을 조건으로 내건 3차 구제금융 협상안에 부정적이다. 가디언은 “시리자는 당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투표에서 긴축안에 반대표를 던진 노동조합, 청년그룹 등으로부터 만만찮은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그리스가 고강도 개혁안을 내놓은 만큼 그리스 국내 합의만 이룬다면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타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그리스 의회에서 승인이 나면 유로그룹은 오는 11일 회의를 열어 이 개혁안을 평가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브리지론과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통한 3년간 자금지원 협상 재개 여부를 협의한다. 12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이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로이터·블룸버그 통신은 “그리스가 3년간 ESM을 통해 받을 3차 구제금융의 규모는 535억유로(약 67조원)”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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