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버티기 모드’다. 노동계는 내년 1월까지 임금피크제에 대해 입을 닫을 태세다. 다급한 정부는 그럴수록 조바심만 더 난다. 문제의 발단은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었다. ‘청년 같은’ 고령자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정년연장은 시대적 대세다.
그렇다고 쉬이 결정할 일도 아니다. 연공제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는 한, 정년연장은 고임금 장년 근로자의 수만 늘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입법자는 ‘절충’을 택했다. 정년연장과 임금체계개편을 ‘세트’로 묶어 법을 통과시켰다.
정년은 연장하되, 임금부담은 줄인다는 게 요지다. ‘정년연장법’이라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 법이 골칫거리가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임금체계 개편의 법적 수단을 ‘깜빡’한 게 화근이었다. 둘 다 ‘필수’여야 하는데, 정년연장은‘필수’, 임금체계 개편은 ‘옵션’이 되어 버렸다.
일단 노동계는 법의 틈새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어차피 정년연장은 자동으로 이루어질 터, 굳이 임금피크제라는 부담스런 ‘옵션’을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법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기업이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이 나올 법도 하다. 맞다. 굳이 누군가를 탓한다면 그건 마땅히 입법자여야 한다. 노동계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기득권 지키기에만 열중한다고 몰아세워서도 안된다.
따지고 보면, 권리를 온존하게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질서의 기본 중 기본이 아닌가. 대의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어렵지만 진심을 담아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우리 시대 청년들은 ‘칠포세대’다. 결혼도 연애도 그들에겐 사치다. 구직난도, 비정규직 문제도 유독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들의 고단한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정년 연장’이라는 멋진 카드를 냉큼 받아들기가 왠지 머쓱하고 염치없어 보이는 이유다. 노사정 모두 이를 모를 리 없다.
지금 논란 중인 임금피크제는 ‘채용연계형’이다. 장년근로자에 국한된 과거의 밋밋한 그것과는 다르다. 국가는 정년을 늘이고, 노동계는 장년 근로자의 임금을 낮추고, 사용자는 절감된 인건비로 청년들을 채용하는 독특한 고용정책이다. 노사정 합작의 ‘세대 간 상생전략’인 셈이다. 청장년 근로자 간의‘상생과 연대’를 노동계가 반대할 리 없다.
문제는 불신이다. 노동계가 임금피크제를 꺼리는‘진짜’이유다. 임금만 삭감될 뿐 청년채용은 미미할 것이라 우려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절감된 인건비를 오직 6700여명 청년고용에만 쓰겠다고 수차례 공언해 놓은 상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보증각서’라도 내미는 성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정작 ‘취업규칙법리’에만 매달려 있다. 성급해 보인다. 복잡한 해석도 논란거리이거니와, 용케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단체협약이라는 벽은 또 어찌할 것인가. 앞서서 선도해야 할 ‘좋다는 기업’들만 쏙 빠져 나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기업을 설득하는 일도 중요하다. 사실 ‘경영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답이 없다. 억지로라도 청년고용을 늘이고, 그래서 늘어난 인원만큼 새로 일감을 만들어가야 한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기업으로선 난감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런 방식이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은 바로 이 대목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을 비롯하여 국가부터 나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4월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되었다. 혹여 노사 모두를 기득권 사수에만 몰두하는 집단으로 내몰지는 않았던지 되짚어 볼 일이다.
서로 공감하면서 대화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던가. 정년연장이 부디 우리 청년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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