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근정 기자 = 중국이 세계 반도체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중국 내 최대 반도체회사인 칭화쯔광(淸華紫光)그룹이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인수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면서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칭화쯔광 측이 "마이크론과 협력에 관심이 있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놓고 자금력도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중국이 삼성과 SK 하이닉스 뒤를 바짝 쫓고 나설지 여부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인수성사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내놨다. 중국 텐센트재경(騰訊財經)는 산하 싱크탱크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칭화쯔광이 마이크론 인수의사는 있을 수 있지만 제시 가격이 마이크론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며 "인수는 어려울 것"이라고 15일 분석했다. 양사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인수가 타진되더라도 미국 당국의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언급했다.
전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칭화쯔광은 마이크론에 현재 마이크론 주가에 19.3%를 높인 주당 21달러, 총 230억 달러(약 26조원)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텐센트재경은 올 초 마이크론 주가가 35달러 였던 점을 고려할 때 19.3%의 프리미엄은 마이크론의 구미를 당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230억 달러 인수규모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 사상 최대규모 이지만 적정가격에는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할란 서 JP모건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론의 적정 인수가격은 주당 27~29달러, 총 290~310억 달러 수준"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마이크론이 D램 가격인하에 따른 실적악화 등의 부담에 칭화쯔광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고 하더라도 미국 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 근거로는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IFUS)가 지난 2008년 중국 최대통신장비업체이자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華爲)의 미국 통신장비제조사 쓰리콤(3Com) 인수불허, 2011년 화웨이가 인수한 쓰리리프(3Leaf) 시스템스사 기술매각 요구 등이 거론됐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이 다루는 반도체, D램은 보안 어플리케이션(앱) 등과 연관되는 중요한 기술"이라며 "미국 본토에 남은 유일한 반도체사인 마이크론을 중국에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마이크론과 칭화쯔광 측은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단, 칭화쯔광이 "마이크론과 현재 업무 분야는 다르나 협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구체적인 사실은 공시를 통해 확인해달라"라며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칭화쯔광은 1998년 중국 명문대학이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학교가 설립한 기업으로 지난 2013년 모바일 반도체 기업 스프레드 트램(展訊通信)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迪科微電子) 두 곳을 인수하며 중국 최대 반도체 회사로 성장했다. 현재는 반도체 칩 생산보다는 개발과 설계에 주력하는 팹리스(fabless) 형태로 스마트폰용 시스템 LSI(대규모 직접회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뒤를 잇는 세계 3위의 기업이다.
칭화쯔광의 마이크론 인수제안이 사실이라면 그 뒤에는 중국 정부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20%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난이도가 높고 대량 양산 노하우가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을 마이크론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230억 달러의 인수자금도 중국 정책금융기관인 국가개발은행 대출 등 공적지원을 통해 충분히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국가 IC 산업발전 추진 지침'을 제정하고, 올 3월 '중국 제조업 2025년' 핵심사업의 하나로 반도체를 꼽으며 대대적 지원도 예고한 상태다.
칭화쯔광 외에 마이크론 인수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잠재적 인수자로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삼성과 경쟁하고 있는 일본의 도시바, 미국의 샌디스크와 사모펀드들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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