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빌 코스비(77)는 미국의 대표 코미디 배우이자 흑인 사회의 우상이다. 인종갈등이 심했던 1960년대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 방송 드라마 '나는 스파이’의 주연 자리를 꿰찼고 3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남자주연상을 받았다.
1980년대 중산층 흑인 가정 일상을 그린 시트콤 ‘코스비 쇼’에 출연하며 ‘미국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그런 그가 낯부끄러운 성추문에 휩싸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코스비는 모델 출신 배우 바바라 보먼(47)이 지난해 11월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17세였던 1985년 당시 배우를 꿈꾸던 내게 코스비가 접근해 약을 먹인 다음 강간했다”고 증언한 것을 필두로 피해 여성들의 폭로와 고소가 이어지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여 명이 넘는 피해 여성 상당수는 당시 어린 연예인 지망생들이었다. 그들은 “1970~80년대에 코스비가 포도주나 음료수에 약을 타 먹이고 의식을 잃게 한 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코스비는 성폭행 혐의를 부인해 왔으며 검찰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코스비를 기소하지 않았다.
AP통신이 입수해 지난 6일(현지시간)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코스비는 2005년 법정에서 자신이 이사직으로 있던 필라델피아시 템플대 전 직원에게 진정제의 일종인 퀘일루드 3알 반을 줬다고 인정했다. 그는 “성관계를 하고 싶은 여성에게 줄 의도로 약을 가지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1년 뒤 코스비가 상대방 측과 이 사건에 대해 조건을 내걸고 합의하면서 소송은 조용히 마무리 됐다.
잠잠하던 코스비의 성추문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혹이 계속 제기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폭행 방지와 피해자 권위 향상을 위한 단체 PAVE는 “코스비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며 청원 운동을 시작했고 현재 1만1900명 이상이 서명했다. 10만명이 서명하면 백악관의 공식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상대방 몰래 약을 먹이고 동의 없이 성관계를 하는 것은 강간”이라며 “이 나라는 물론 어떤 문명화된 국가에서도 강간은 용인이 안 된다”고 코스비를 강력히 비판했다. CNN, NBC 등 현지 언론은 “이란 핵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난데없이 코스비 사건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의 ‘강간’ 언급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코스비가 2002년 받은 ‘자유의 메달’을 박탈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그런 전례가 없고 그런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 문화 분야에 뚜렷한 공헌을 남긴 미국인에게 주는 ‘자유의 메달’은 미국인에게 가장 큰 영예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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