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역사적 이란 핵협상 타결에도 미국과 이란이 36년간 지속해온 정치·외교적 적대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반면, 이란 경제는 해외 국가들의 적극적 '러시'로 대(對)이란 제재가 해제되기 전부터 36년만의 '해빙기'를 맞고 있다.
◇ 이란 최고지도자 "미국은 여전한 적"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최근 전격 타결된 이란 핵협상에도 이란의 대(對)미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며 미국에 대립각을 세웠다.
하메네이는 18일(이하 현지시간) 테헤란의 모살라에서 열린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 종료 기념 축제인 '이드 알피트르' 기도해 연설을 통해 미국을 "오만하다"고 표현하며 "핵 협상 하나로 최대 적인 미국과의 관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독일이 참여한 이번 합의가 아직 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법제화 이전에 합의에 이란의 국익을 해하는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국방력을 약화시키거나 혁명 정신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등을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하메네이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란 구호가 이란 전역에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하자 연설을 듣던 군중도 같은 구호를 외치며 화답했다. 이 반미 구호는 모살라에 열리는 집회나 예배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하메네이의 이날 연설은 핵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자국 보수파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 내 강경 보수파는 핵협상 타결로 이란이 미국과 전반적인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협상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 유럽국, 너도나도 이란 진출 '물밑작업'
이란 핵협상이 미국과 이란의 오랜 반목관계를 풀어내는 데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란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관계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란 핵협상에 따른 대이란 제재 해제 결정으로 중동 최대시장 이란으로 진출하는 서방 국가의 '러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제가 풀리는 시점은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지만, 이란을 향한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 행보는 이미 본격화됐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19일 테헤란에 경제장관이 이끄는 대규모 통상·경제 사절단을 사흘간 일정으로 파견한다. 스페인 또한 오는 9월 장관급 고위 인사와 주요 기업인으로 이뤄진 경제 사절단을 이란으로 보낼 예정이다.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외무장관도 곧 이란을 방문, 양국간 경제 교류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4월 2일 잠정 타결이 되자마자 경제 사절단을 이란에 보낸 상태다.
유럽과 달리 이란 진출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간 미국 정부가 가장 강력한 수위의 대이란 제재를 주도해 온 탓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컨설팅 업체 베리스크 매이플크로프트의 중동담당 수석연구원 토브욘 솔트베트는 AP통신에 "누가 불리할지는 뻔하다. 미국 회사일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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