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남궁진웅 timeid@]
지난 2000년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의 조감독으로 시작한 최동훈 감독은 2004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범죄의 재구성’과 2006년 ‘타짜’, 2009년 ‘전우치’, 3년전 ‘도둑들’까지 연속으로 흥행시킨 것만 봐도 대중이 ‘최동훈 표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22일 개봉된 ‘암살’(제작 케이퍼필름)도 최동훈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만주 이청천 한국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과 작전을 위해 암살단을 불러모으는 냉철한 임시정부 김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돈만 주면 국적 불문, 나이 불문 누구든지 처리해주는 상하이의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등 이들의 엇갈린 선택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외에 오달수(영감 역) 조진웅(추상옥/속사포 역), 최덕문(황덕삼)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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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을 찍으면서 애국심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론 찍는 과정에서 묘하게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 한국에 사는 ‘우리’라는 대중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애국심이라는 것을 느끼긴 했죠. 관객들도 느끼길 바랐죠. 태극기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건 사실 클리셰와 같은 것인데, 정말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심이 있어야하는 거라고요. 촬영 시작하고 2회차 때 찍었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멋진 태극기 앞에서 영화를 찍으며 묘한 기분이 느껴졌죠. 그때 캐릭터들도 ‘진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 주인공인 안옥윤과 염석진, 하와이 피스톨 외에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어요. 마치 ‘슬램덩크’에서의 ‘캐릭터 살리기’ 느낌이 있었어요.
▶ 전통적인 영화에서는 2명 또는 1명의 주인공이 있고, 나머지는 다 주변인물이 되는 편이죠. 개인적으로 ‘슬럼덩크’는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주변인물에 그치는 캐릭터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인물들의 얘기가 교차되는 게 정말 좋은데 그래서 러닝타임이 좀 길죠. ‘불치병인가’란 생각도 들지만 영화를 본다는 게 즐거움인데 10분 삭제해서 뭔가 달라질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르기는 내가 잘 자르지’라면서 편집했다가 원래대로 가는 게 재미있겠다는 의견이 있어 생각했던 버전으로 편집을 했어요. 저는 지금껏 감독 버전을 만든 적이 없거든요. 개봉된 영화가 감독 버전입니다.

[사진=남궁진웅 timeid@]
▶ (잠시 고민한 뒤) 음…. 저는 백범 김구(김홍파) 선생님과 약산 김원봉(조승우)을 그리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모든 캐릭터에 애정이 가죠. 김구 선생님과 김원봉만 실존인물이라 누구를 캐스팅해야 할까 고민이 됐죠. 김구 선생이라는 이미지를 학습을 통해 알고 있잖아요? 그 이미지를 배신하지 않으면서 연기력을 갖춘 분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김홍파 배우를 찾았을 때 진짜 기뻤죠. 제가 생각했던 너털웃음을 지으며 호방함과 함께 강단이 쎈 김구 선생님과 맞아 떨어졌죠. 김원봉 단장은 대중이 잘 모르는 인물이라 관객들에게 각인되길 바라면서 조승우 씨한테 연락을 했어요. 흔쾌히 와서 딱 5일 찍고 갔죠.
- ‘암살’ 시나리오 때부터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평소 트리트먼트(약 15개의 시퀀스를 챕터로 나누어 정리한 형태, 시놉시스 다음으로 줄거리에 살을 붙여 소설처럼 써 내려간 것)를 많이 써두시는 편인가요?
▶ 저는 트리트먼트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대화를 통해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편이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첫 줄을 쓰는 순간 미친 듯이 미끄러지듯 흘러야하는 거니까 그 전에 말로 다 설명을 해봐요. 주변사람들한테 잘 설명을 할 수 있는지, 듣는 사람이 질문을 했을 때 답변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거죠. 그 다음에 쓰기 시작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농부와 어부가 있다고 생각해요. 농부는 매일 아침 논이나 밭에 나가 조금씩 가꿔서 가을에 수확을 한다면 어부는 3일 정도 배를 타고 나갈 준비를 했다가 물고기를 왕창 잡아와 푹 쉬며 놀다가 다시 준비해 나간다는 의미로요. 저는 어부 스타일이지만 농부나 어부, 모두 쓸 때는 광부가 채석장에서 금괴를 캐듯 써야죠. 하하.
- 이번에 전지현 씨가 특히 고생을 한 것 같아요. 1인2역도 그렇고 액션신도 그렇고요.
▶ 아시겠지만 전지현 씨가 진짜 코미디를 잘하거든요. 저만의 믿음이 있는데 코미디를 잘하는 배우가 다른 연기도 잘한다는 거죠. 지현 씨한테 되게 진지하고 속이 깊은 역할을 주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도둑들’의 예니콜보다 더 스펙타클한 경험이었죠. 흔히 감독이 연기지도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지도라기보다는 같이 상의를 하는 거죠. 배우가 생각하는 것과 감독이 생각한 시나리오와 일치해야 하는 거니까요. 촬영 때 배우의 역량이 나오는데 열정이 넘치는 전지현과의 호흡은 정말 좋죠.

[사진=남궁진웅 timeid@]
▶ 말 그대로 넘치는 에너지를 소유한 사나이입니다. 정말 긍정적이죠.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냐면 ‘나 이따 쟤랑 친구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남자에요. 시선이 너무 좋더라고요. 흔들림이 없는데 힘이 있어요. 하와이 피스톨이 우아하고 로맨틱하면서 멋있는 장르적 캐릭터이길 바라고 정우 씨한테 얘기를 했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도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하정우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쓴 영화니까요. 원하던 배우가 캐스팅이 됐을 때, 집에서 술을 마신 기억이 있네요.
이정재는 말할 필요도 없죠. 저는 배우가 그 영화의 온도와 색깔을 정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안옥윤을 전지현이 아닌 다른 배우가 했다면 다른 모습이 나왔겠죠. 그래서 되게 조심스럽게 캐스팅을 합니다. 친분 때문에 캐스팅을 하지도 않고요. 크랭크인 되면 몇 달 동안 매달려야하는데 ‘내가 즐거울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해요. 그렇지 못하면 괴로우니까요. 조진웅의 경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하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원래 생각하고 있었지만 영화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해주면서도 압도감이 있게 잘 표현해줬어요. 속사포의 냄새가 났어요. 행운이었죠. 이경영 선배는 나쁜놈이죠. 캐릭터 말한 겁니다. 하하. 집사 김의성 선배도 정말 최고였죠. 특히 진경 씨는 제 속에서는 전지현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지현 엄마니까요. 1910년대 미모의 강단 있는 사대부 여인을 그리고 싶었는데, 딱이었죠. 멋있었죠.
-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떠세요?
▶ 편집이 끝나자마자 빨리 스태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뻤죠. 저에게는 정말 남다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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