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신흥국발 외환 위기 발발의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 경제 뇌관으로 떠오른 중국증시 사태와 함께 원자재 가격 붕괴, 달러 강세, 미국의 저금리 시대 종식 우려 등 '전방위적' 압박이 신흥국 통화가치를 빠르게 떨어뜨리고 있어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달러 대비 주요 10개 신흥국의 통화가치를 반영한 JP모간 신흥시장 통화지수가 1999년 산출을 시작한 이후 15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장 약세를 보이는 화폐는 브라질 헤알로, 달러 대비 가치는 올 들어 22% 가까이 추락했다. 그 다음은 콜롬비아 페소로 절하폭이 17%나 됐다. 러시아 루블화는 올해 1% 조금 넘게 하락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 이후 하락폭은 44%로 24개 신흥국 통화 가운데 가장 컸다. 이들 국가는 원유, 구리, 철광석 등 원자재를 주로 수출하는 국가다.
한국 원, 태국 바트, 말레이시아 링깃,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월 이후 이들 통화의 미국 달러에 대한 가치는 각각 8.6%, 12.2%, 19.8%, 27.3%씩 하락했다.
신흥국 통화 가치 급락 사태는 일부 자원 수출국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급진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및 쿠르드노동자당(PKK)과의 충돌로 정정불안이 심한 터키의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15% 가량 떨어졌다.
문제는 통화가치뿐 아니라 주가, 채권 가격 역시 동반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신흥국 증시를 대표하는 MSCI 지수는 10.9% 급락했고, 신흥시장 국가의 국채·회사채 수익률 역시 동반 상승했다. 채권 수익률은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FT는 "외환시장은 투자 심리에 대한 선도자 역할을 한다"며 "시장의 슬럼프는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의 극심한 매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흥 시장에 불어닥친 이같은 위기는 세계 2위 규모인 중국의 성장 둔화 속에서 최근 증시 급락사태까지 이어지며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은 최근 기록적인 지점 수준까지 내려섰고, 이는 신흥시장의 취약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알베르토 갈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애널리스트는 "중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속되고 '다른 위험'까지 현실화되면 글로벌 자본시장에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위험'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상 가능성이다. FRB는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고수익을 노리고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었던 막대한 글로벌 자금이 대거 유출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된다.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전략가 제임스 로드는 연준의 금리인상을 '현존하는 최대 위험요인'이라고 판단하며 "강한 미 경제지표에 힘입어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에 어떤 변화라도 생긴다면 시장의 변동성이 더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수출 주도형 신흥국의 경우 수출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 약세를 반기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화 약세가 물가 상승 및 외채 상환 부담 증대로 이어질 수 있어 금융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