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장남감이 없던 시골집에서 장난감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파란 날개의 선풍기였다.
바람이 날리는 선풍기 뒤에서 마치 가수인 냥 노래를 불렀다. 선풍기 단 수를 이리저리 바꾸며 노는 재미도 쏠쏠했다.
놀다 제 풀에 지치면 대청마루에 누워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잠들었다.
지금도 파란 날개의 옛 선풍기를 보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 때 그 시절 시골집이다.
그리고 최근 그 향수가 떠오른 것은 50년 넘게 선풍기를 만들어 온 신일산업의 천안공장을 방문한 때였다.
천안공장에 있는 쇼룸에는 과거 시골집에서 봤던 낡은 선풍기가 전시돼 있었다.
고객 중 한 명이 선풍기와 관련된 추억을 편지에 담아 기증한 선풍기였다.
1959년에 창립한 이래 줄곧 선풍기를 만들어온 국내 소형가전 토종기업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테팔이나 필립스 등 외국 기업들이 국내 소형가전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 6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오는 신일산업은 그만큼 이례적이고 의미가 깊다.
하지만 신일산업은 현재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시달리며 경영권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일산업 경영진들은 청와대 및 법무부, 금감원 등에 탄원서 혹은 진정서를 내며 유관기관에 빠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삼성-엘리엇 사태와 같이 대기업이 지분을 통한 분쟁이 발생하면 유관기관 및 언론 등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주소다.
이에 적대적 M&A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대다수가 회사가 넘어가거나 상장폐지 되는 등의 비극을 겪는다.
국내에 자생적이고 역사 있는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토종 기업을 지키기 위한 유관기관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