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경영시대 도래]호암이 오너경영을 선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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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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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 ‘책임경영의 시대’ 오너에게 기회를 줘야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자 노력을 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생전 가족들에게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명인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 여기 잠들다’에서 영감을 얻어왔다고 한다.

호암은 삼성을 일으키면서 6.25 패전 이후 국내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공장을 설립한 것과 함께 평생을 인재를 모으고 키우는데 자부심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가 등용한 손욱·윤종용·이윤우·황창규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전문경영인이 삼성의 부흥을 리드해 왔다. 현재도 다수의 전문 경영인이 삼성을 이끌고 있다. 또 다른 기업들은 삼성 출신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인재중심경영에 있어 삼성만큼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인재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호암이 그룹 경영권을 이양함에 있어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호암자전이 발간되기 이전인 1976년, 호암이 직접 작성해 국내 언론에 기고한 회고 기사에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담고 있다.

“경영과 자본은 반드시 분리해야 좋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경제구조는 물론이요 정치적 현실, 사회적 풍토, 또는 민족성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은 거의가 자본과 경영이 분리됐고, 서구에서는 자본이 분리되지 않은 기업이 많다. 이는 분리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일본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분리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유능하기는 하지만 건전한 기업정신이 부족한 경영전문가이 적지 않아 폐해가 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은 아직도 시기상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호암은 한 명의 인재가 리더, 즉 사장의 지위에 까지 오르기 위한 조건으로 △치밀한 계획능력 △통솔력 △투철한 판단력 △참신한 아이디어 구상력 △책임감 등을 꼽았다. 일반적으로는 이중에 으뜸으로 통솔력과 책임감을 선택할 것이다. 호암은 통솔력 그 위에 있는 가치를 ‘책임감’ 그것도 ‘무한 책임감’이라고 강조했다.

최고경영자로 경영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불가항력에 의해 기업이 좌절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역시 책임은 사장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사장 자신은 그렇게 여겨야 옳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무한 책임감은 사장이 경영상의 실패로 기업을 위기에 몰아넣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중역들이 겪는 압박의 몇 곱을 이겨내고 극복하며 회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고된 자리가 사장이라는 것이다.

임원, 사장이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전문경영인 경영체제가 보편화 된 미국에서 완벽한 리더 양성프로그램을 통해 최고경영진(CEO)를 키운다고 평가되는 제네럴 일렉트릭(GE)의 속내를 살펴보자. 임원으로 승진예정인 간부중에서 80% 정도가 중역 취임을 거절한다. 실력 본위의 치열한 경쟁에서 안락한 생활이 불가능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룹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사장의 중압감을 훨씬 뛰어넘는다. 호암은 그룹을 이끌어갈 회장의 자격으로 사장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강조했다. “과연 누가 삼성을 물려받아 국민경제에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경영하겠느냐”는 물음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호암은 “자수성가한 아버지(창업자)는 자기 아들(후계자)이 자기보다 훌륭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창업보다 계승이 한결 어렵다. 아버지보다 훌륭한 자식이라 해도 아버지만큼이나 빛이 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에 경영이 잘못돼 공장이 몇 개만이라도 조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게 되면 그만큼 취업기회를 빼앗고,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삼성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던 비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사보타지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을 잘못한다는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삼성안에는 나보다 식견이 있는 사람도 많다. 나보다 실무에 밝고 경영에 능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보다 몇곱 훌륭한 인재라 해도 나의 뒤를 잇는다는 약점을 이겨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경제의 관점에서 장기적 시각에서 기업을 키우고 그 일이 임직원, 국민, 지역사회, 국가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무한 책임감. 이런 생각에서 그는 적어도 오너경영이 한국에서는 지켜져야 한다고 봤다. 삼성그룹이 아들 이건희 회장을 이어 손자 이재용 부회장으로 3세 오너 경영체제를 구축하려는 것도 호암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8.15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기업인 사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 국민들에게 기업인 사면을 요청하며 “그들이 현장에서 잘못을 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있다.

재계에서 오너 경영인에게 기회를 달라는 이유는 호암이 언급한 것처럼 전문경영인이 주를 이루는 사장, 부회장보다 한단계 더 위의 책임감을 지닌 회장 자리를 대치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회의 지탄을 받는 중질의 범죄를 저질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경제 성장에 기여하다 한번의 경영상 실수로 기회를 잃어 버린다면 기업은 물론 경제적으로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적어도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의 발현은 오너 창업자에 의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왔다. 오너경영에 대한 무조건 불신, 전문경영인의 경영에 대한 환상 등 이분화 된 시각이 아니라 양 체제의 장점을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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