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전날 사면심사위원회가 결정한 사면안을 11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기업인 사면’이 애초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번 사면에서 대기업 총수 등 경제인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신중하고도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저마다 ‘아전인수’격의 입장을 표명,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삼은 광복절 특별 사면의 진정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런 기류는 전날 열린 사면심사위원회 회의에서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심사위에선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 그간 이름이 거론된 대기업 총수 등 경제인에 대한 사면·복권 방안을 놓고 심사위원들간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 결과 최 회장, 구 전 부회장 등은 사면대상에 포함된 반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김승연 회장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전언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참모는 “사면심사위에서 이미 경제인 규모를 줄였다고 하는데 대통령께서 이를 다시 늘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사면권이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철학이 결국 경제인 사면에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로 인해 재벌가(家)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곱지 않은 점도 경제인 사면 축소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다만 관심을 끄는 대기업 총수 가운데 과연 누가 사면 대상에 포함되고, 누가 빠질지는, 오는 13일 사면안이 최종 확정되는 임시국무회의까지 단정할 수 없어 보인다.
최종결심을 앞둔 박 대통령은 이번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신중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과거 정권처럼 원칙없는 사면권 행사에 부정적 입장을 공언해 온 만큼, 기존의 사면 철학을 신중하게 적용하되 국민 공감을 기준점 삼아 경제살리기나 국민통합에 부합하는 지를 심사숙고한다는 것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사면이 발표될 때까지 청와대는 확인도, 언급도 안 할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는 국가발전과 국민 대통합,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이번 사면의 원칙과 의미가 잘 조화될 수 있도록 계속 고심하고 계신다”만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에서는 이날 최태원 SK 회장의 사면을 기정사실화한 채 “타당한 결정”이란 입장표명이 나와, 당 지도부가 “개인적 의견”이라며 진화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 여당 간사인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법무부 사면심사위에서 최 회장에 대한 사면을 결정하고 청와대에 상신키로 했다고 한다"며 "대단히 타당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 의원의 발언을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못박았다. 이는 '재벌 비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이번 재벌 대기업 총수 대신 서민과 약자를 위한 국민 대사면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제주도 강정마을과 용산참사 관련자들의 사면을 요구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전날 “재벌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혜 사면을 자제하고 서민과 약자를 위한 국민 대사면이어야 한다”면서 “제주도 강정마을 사태와 용산참사 등 비민주적 절차로 국책사업을 강행하다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화합하는 차원의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치인은 아예 이번 사면대상에서 원천 배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인 특사에 대한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정치인은 이번 사면 대상에서 아예 배제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