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감독 안국진·제작 KAFA FLMS) 개봉을 앞둔 8월 7일 아주경제는 ‘성실한 앨리스’ 이정현을 만났다.
“이 영화는 이정현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는 칭찬을 들었어요.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다행히 기자,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것 같아서 기분 좋아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관객분들 반응들이 정말 다이나믹하더라고요(웃음). 웃다가, 놀라다가, 소리 질렀다가…. 90분 안에 그런 다양한 반응을 보면서 즐겁기도 하고, 긴장되게도 했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생계밀착형 코믹 잔혹극이라 불리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KAFA 장편가정 7기 안국진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이정현 역시 “소속사는 큰 작품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놨지만, 정작 본인은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기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더 컸다고.
“이렇게 여성 중심, 여성 원톱의 영화는 처음이에요. ‘차이나타운’, ‘밀양’ 같은 작품도 여성 위주의 영화였지만 투톱이었잖아요. 게다가 여성 원톱 영화면서 색다른 내용이라 정말 신났었죠. 제가 느끼기에 다른 작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처럼 느껴졌었거든요. 그래서 ‘명량’ 이후 작품을 못 고르고 답답해하고 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목마름. 영화 ‘꽃잎’ 이후로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렸다. 줄곧 “공포영화나 신들린 역할”만 들어왔고 “가수 활동을 병행하며 더욱 강한 이미지의 작품을 만나게 됐”다. 연기에 대한 한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이정현은 해외시장에서 드라마, 영화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그 마저도 성에 안 찼죠. 전 한국 사람이니까요. 한국에서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갈증을 풀어준 건 박찬욱 감독님의 ‘파란만장’이었던 것 같아요. ‘파란만장’을 통해 ‘명량’에 출연하게 됐고 ‘명량’ 덕분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하게 된 것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좋은 작품들끼리 연결고리가 됐고, 연기에 대한 제 한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 같아요.”
평소 이정현에게 “넌 배우”라며 힘을 실어줬던 박찬욱 감독은, 이정현에게 ‘뉴 타입’의 시나리오를 하나 건네줬다. 이상한 나라에서 툭 튀어나온 듯, 익숙하지만 낯선 수남이라는 인물이었다. “최근 본 시나리오 중에 최고”라는 극찬까지 덧붙인 박찬욱 감독의 추천에, 이정현은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고 수남이라는 인물에 매료돼 버렸다.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완벽했어요. 단숨에 130 신 분량의 시나리오를 읽어버렸죠.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남의 캐릭터를 정리했어요. 이건 이렇게 하면 되겠고, 저건 저렇게 만들면 되겠다 하면서요.”
단박에 “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박찬욱 감독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하는” 이정현에게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야말로 취향저격인 작품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시나리오인 것처럼, 단숨에 수남이라는 인물이 정리됐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냈어요. 감독님과 이런, 저런 상의를 많이 했죠. 시나리오상에는 30대 여인의 복수, 응징 같은 것들이 표현되는데 워낙 그로테스크하다 보니 이런 복수심이 관객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았어요, 수남이 오로지 사랑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게, 어떤 관객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수남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수남의 순수함, 남편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그리고자 했어요.”
이정현은 관객에게 수남을 납득시키기 위해, 그를 더욱 “순수하고 유아적으로 표현”했다. “수남의 정당성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편지에 쓰는 글씨체부터, 밥을 먹는 장면들”까지 수남의 유아적인 모습을 살리려 디테일을 만들어냈다. 그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수남을 완성했고, 영화 전체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에 일조했다.
“다섯 살짜리 조카를 보면서 많이 얻어왔죠. 조카가 거짓말 할 때 짓는 표정이나 말투, 편지를 쓸 때 받침들을 직각으로 쓰는 것이며 밥 먹을 때도 어린아이처럼 주먹을 쥐고 숟가락을 사용하고요. 어색할 수도 있는데, 정상이 아니라는 것과 수남의 정당성을 살리기 위해 만들었던 부분이에요.”
한마디, 한마디에 작품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연기에 대한 갈증과 작품에 대한 애정은 곧 꼼꼼함으로 대변됐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며, 캐릭터의 디테일, 미처 관객이 보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바라보는 시선은 ‘완벽’에 가까웠다. 이를 두고 “완벽주의자 같다”고 감탄하자, 이정현은 “실제로는 얼마나 허당인지 모른다”며 손사래를 친다.
“평소에는 정말 평범하게 지내요. 심지어는 허당이라니까요(웃음). 하지만 창작을 하는 활동에서는 준비 과정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요. 콘셉트에 대해 대중이 얼마만큼 좋아하실지, 이 콘셉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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