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북한은 협상 도중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회의가 전개되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치열하게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판' 자체를 깨지는 않았다.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도합 43시간 동안 펼쳐진 이번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서는 북한측 대표단의 요청에 따라 수차례 정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이 중단된 시간 북한 수석대표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대표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협상 내용을 보고하고 여러 차례 추가 훈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를 고려하면 이 연락은 대표단에 포함된 보장성원(안내요원)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으며, 북측이 회담을 위해 설치한 비화(송수신 내용의 암·복호화가 가능한 장비)팩스나 비화전화기가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북한내 권력서열 2위의 인물인 만큼 그에게 지시를 내린 인물은 당연히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제1위원장이다.
협상은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가 참석해 2대2 형식으로 진행되거나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남측 김관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만나는 수석대표간 회담 형식으로 이뤄졌다.
회담 과정에서 양측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북측이 때때로 목소리를 높여 위협적인 분위기도 조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회담이라는 '판' 자체는 깨지 않고 역대 최장시간의 회담이 유지되며 결국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은 이번 회담에 대한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북한 대표단이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협상이 끝나면 김양건 비서가 처벌이나 숙청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분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번 접촉에 임하는 북한 대표단의 절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회담에서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례적으로 '끈질긴' 태도를 보인 것은 남북 대화를 제외하면 현재 교착 상태를 풀어낼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회담을 전후해 나온 북한의 반응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협상에 무게중심을 둔 것 같다"며 "이후 여러 군사적 움직임도 결국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던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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