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웠던 곳이 있다. 바로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이다. 이제 한 숨을 돌렸다. 남과 북이 다시한번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10일 전만해도 광복 70년의 기념비적 성과와 업적을 논하며 다들 우쭐해 있었다. 그 달뜬 기분은 싹 가셨다. 이처럼 광복 70년의 환희와 감동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과 포격전으로 광복 70년의 열기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분단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쉽게 부서져 버릴 수 있는지, 그래도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줬다.
이처럼 광복 70년의 여러 빛나는 성과에 비해 특히 아쉬운 점이 바로 분단이다. 70년간이나 지속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유관순, 한용운, 김구, 이시영 등 독립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쳤던 애국지사들에게 면목이 없다.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 분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이 분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일본보다 비좁은 한반도안에서 둘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지금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도 선배로서 미안할 따름이다. 앞으로 30년이 지나 광복 100주년을 기념하는 순간에는 통일된 한반도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 30년 후에도 우리 후손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한 역사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가 독일 통일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번째 외교의 중요성이다. 서독과 동독의 분단 상태를 즐기는 나라들이 많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시작된 1970년 전후에도 그랬다.
빌리 브란트의 참모로, 동방정책의 설계자였던 ‘에곤 바르’(Egon Bahr)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소련과 폴란드 등에게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다는 약속을 통해 그들을 안심시켰다. 독일의 문제는 동독과 서독이 자주적으로 풀겠다는 양해도 받아냈다.
과거의 독일처럼 우리의 통일은 우리의 외교 역량에 달려 있다. 지금 한반도 주변국들도 남북 분단을 즐기고 있다. 통일 한국을 바라는 주변국은 하나도 없다. 이처럼 복잡한 한반도의 역학 관계를 외교적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지도자들과 정부 당국자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이다.
독일 통일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두번째 교훈은 ‘작은 발걸음’(baby step)의 중요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접촉을 통한 변화’다. 이 정책 역시 ‘에곤 바르’의 작품이었다. 빌리 브란트와 에곤 바르는 이러한 정책의 기조를 ‘소련’과 ‘동독’에 적용했다. 작은 발걸음은 상대방을 긴장시키지 않고 안정과 안심을 준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변화하도록 만든다.
작은 발걸음이 큰 발걸음이 되었고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1980년대 후반 통일되기 직전 동서독간 22개 분야의 위원회가 가동됐다. 양 국민이 상대방 TV를 볼 수 있었고, 각각 50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상호간에 방문을 했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처럼 통일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번째 교훈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민족과 역사가 걸린 문제에 여야가 따로 없었다. 수상이 바뀌고 집권당이 바뀌더라도 독일 통일을 향한 정책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접촉을 통한 변화’는 헬무트 슈미트로 이어졌다.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 정권이 변했지만 헬무트 콜의 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결국 독일은 통일되었다.
8월25일 새벽에 남북합의문이 발표되자 벌써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예상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작은 발걸음(baby step)으로 다방면의 접촉을 통해 인내심을 갖고 상대방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
주변국들에게 외교역량을 발휘해서 통일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정권은 바뀌더라도 통일을 위한 정책은 바뀌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일 통일의 교훈을 망각한다면 한반도에서의 나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런 분단과 대립의 상태로 광복 100주년 8.15를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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