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경제가 역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각종 개혁 추진과 관련해 내용이나 강도 못지 않게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개혁도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을 해달라>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중국발 경제쇼크를 예단하기 힘들다. 과열된 증시가 조정을 받는 것으로 끝날 수 있고, 금융패닉이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가 경착륙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우리도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할 때는 중국이 버텨준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팽배할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경제 충격의 근원지가 중국이 될 경우에는 문제가 커진다.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등 중국 경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발 경제 위기와는 달리 중국 발 경제 위기는 우리 경제에 즉각적인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비유를 하자면 마른 땅에 비가 올 경우와 달리 지금은 이미 젖은 땅이어서, 비가 오게 되면 홍수 피해가 더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경제의 내부 상황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대외적인 여건마저 어려워지면 우리 경제가 맞이할 어려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좀비기업이나 가계 부채 등으로 인해 경제의 역동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그레이트 코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가 다이내믹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과도한 위기 조성은 자제해야겠지만 위기 의식을 높일 필요는 있다. 우리 경제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장잠재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과거 중국 경제가 우리 경제발전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면 자칫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가 4대 개혁에 올인하고 있지만, 개혁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과 크게 관계된 문제다. 주요한 개혁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를 통한 법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총선 등 여러 정치 일정 때문에 개혁 프로그램들이 정치화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혁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집단들의 이기주의에 정치권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개혁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고 있다.
개혁은 결국 많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인 이익집단들의 저항으로 인한 비대칭 문제로 개혁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찔금찔금하면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래서는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해진다.
민간인 출신으로 첫 금융위원장에 임명됐을 때 금융개혁을 위한 많은 노력들을 기울였다. 금융 감독의 DNA를 바꾸는 것이 첫째 목표일 정도였다. 대표적인 것이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지분참여 제한) 완화였다. 산업자본의 경우 의결권 지분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던 규정을 고쳐 9%로 늘렸으나 현 정부 들어 다시 4%로 줄었다.
이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개혁의 내용이나 강도 못지않게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개혁의 추진 방향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여러 가지 개혁을 통해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일회성 이벤트로는 제대로 된 투자 유치를 하기 힘들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우리의 정치 환경을 개선하고 근본적인 규제를 푸는 등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경우도 정부의 실적내기에 쫒기고 정치권의 개입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따라서 어떤 사안이든 조급하게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개혁추진에 있어 모든 문제의 귀착점이 정치적 환경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보스포럼 등에서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는데, 그 중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순위가 처지는 것이 두 항목이 있다. 바로 금융경쟁력과 정치시스템 효율이다. 이 순위가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여러 가지 정책에 평가한다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 등을 통해 침체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잘 되길 바라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조언하고 싶은 것은 5년 임기 내에 무엇을 다 이뤄내려고 하지 말고, 육상에 비유하자면 '계주를 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집권하자마자 각종 개혁을 추진했으면 지금보다 저항이 적었을 것이다.
개혁 추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역량이 있는 관료들을 중용하는 것이다. 하반기 국정운영에 있어 공무원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관료집단이 매도당해 왔는데, 물론 문제가 있는 관료에 대해서는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공무원들이 자긍심과 소명의식을 갖고 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인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유연하게 공무원들에게 대해 유인을 제공하고 자발적으로 개혁에 앞장서도록 해야 한다.
이번 남북 대치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리더십을 잘 보여주었다. 박 대통령은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이번 사안에 대해 직접 챙겼다. 이스라엘이 거대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보면, 아랍국가의 지도자들은 군사들에게 앞장서라고 한 반면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기가 앞장서면서 군사들에게 따라오라고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의를 앞세운 자기희생이 있을 때 개혁의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인사들을 중용해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했는데, 향후 중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하기 전에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중국과의 인연이 깊다. 그 뒤로도 중국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지만, 점차 알면 알수록 우리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화적으로도 그렇게 기업경영 마인드나 컨셉 등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경우 일각에서는 금융 공산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정부의 통제가 심하다. 제조업에서는 그러한 통제가 통할 수 있지만 금융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중국 경제의 앞날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이다. 다만 중국이 교차로에 서 있으며 이런 상황이 이미 예견돼 왔다는 것이다.
과거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이 G2를 넘어 G1으로 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물론 중국이 G2로 가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G2로 가는 길이 순탄한 고속도로가 아니라 많은 걸림돌이 많은 굴곡진 도로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리더 자리를 뺏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벌 리더는 단순히 경제적인 수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관습, 시스템 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어쩌면 중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은 시스템 재정비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당한 수준의 잘 관리된 감속은 좋지만, 통제 불능의 감속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한중 관계의 급속한 진전에 대해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의 우려가 나온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지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3년간 우리나라에서 겪은 가장 큰 변화를 물었더니 ‘한중관계 개선’이라고 말하더라. 그 정도로 최근 한중 관계는 급속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슈퍼파워 국가들과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 진전을 위해 한미 관계가 소홀해질 경우 치를 수 있는 비용도 고민을 해야 한다. 한중 관계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한미, 한일 관계도 근본적인 신뢰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즉 지혜로운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과의 관계 진전과 관련해 두 나라 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친밀도를 내세우는 것보다 국가 간의 신뢰관계에 무게를 둬야 한다. 국익이라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레이트 코리아로 가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조언해달라>
각계의 지도자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기적으로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우리 경제를 부실하게 만드는 요인들을 선제적으로 제거할 필요가 있다. 좀비기업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단기적으로 위기 국면을 타개할 적극적인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현 정부가 100미터 단거리에 매달리지 말고 다음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있는 정책 개발을 통한 계주를 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거나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면 된다.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는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경제 주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대담 및 정리=박원식 부국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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