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안승호 한국유통학회장 "국내 면세점 운영은 '경주 수학여행 기념품 판매'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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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9-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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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기업 모두 적극적·능동적이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 기대 어려워

  • 정부의 근시안적 면세 정책, '과감한 개혁' 필요

[한국유통학회 안승호 회장. 사진=정영일 기자]


아주경제 정영일 기자 = "얼마 전에 경주를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주의 기념품은 바뀌질 않았더군요.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니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면세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첫 방문객들만 찾아오다 보니 상품 판매가 잘 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해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 상품을 개발하지 않거나 관련 콘텐츠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정부나 기업 모두 직시해야만 합니다."

한국유통학회 안승호 회장(사진·숭실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우리나라 시내 면세점 운영을 '경주 수학여행 기념품 판매'와 다르지 않다며 비판했다.

안 회장은 우리나라 면세점의 가장 큰 문제점이 정부의 근시안적인 특허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15년 만에 대기업에도 빗장을 풀어 7개 법인이 각축전을 벌인 가운데 한화갤러리아와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한 HDC 신라가 일반경쟁에서 특허를 획득했지만 선정 과정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안 회장은 관세청 특허 심사의 문제점은 조목조목 지적했다.

먼저 무조건적 중소·중견기업 살리기는 오히려 특허 획득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많은 기업들에게 특허권을 내줬지만 오래가지 않아 문을 닫았고 반납했던 과거 사례를 들었다.

실제로 국내 면세점은 외화 획득과 무역 수지 개선을 목적으로 1962년 김포공항 출국장에 처음 설치됐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 올림픽게임을 유치하면서 면세점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1990년대 외환위기로 면세점 폐업이 속출했다. 한진·AK(애경) 등도 경영악화로 2003년과 2010년 면세점 특허를 반납했다.

2012년부터 2014년 말까지 중소기업 12곳이 특허를 받았다. 이 가운데 4곳이 허가권을 자진 반납했거나 취소했다. 30년 동안 17개 면세점이 역사 속으로 이름을 감춘 것이다.

비교적 규모가 있는 기업인 파라다이스 역시 1986년 중구 장충동 본사 사옥에 시내면세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실적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5년 뒤인 1990년 10월 폐점했다. 이 회사는 부산에서도 면세점 사업을 벌였지만 이 또한 신세계그룹에 넘겨야 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유통망과 다른 구조의 면세점 운영에서 자본금이 부족할 경우 중소 중견기업들에게는 '독이 든 성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시내면세점 17곳, 출국장 면세점 20곳, 지정면세점 5곳 등 모두 기업 42곳이 특허를 받아 운영 중이다.

안 회장은 또 상생만을 외치며 국내 중소기업들의 물품을 시내 면세점에 무조건 비치토록 하고, 이를 배점 기준에 포함시킨 것 역시 무리라고 강조했다. 외국인들을 끌어들일 우수한 '미끼 상품' 개발이 우선되어야 하는 데 주객이 바뀐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면세사업자 스스로도 국내 사업 발전을 위한 노력이 부족해 중소기업 제품 전시를 위한 면적만 제시하는 무리수가 발생하는 비현실적인 경쟁이 조장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안 회장은 정부가 면세점의 정의부터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항이나 항만 면세점은 내국인 판매를 중심으로 한다면, 시내면세점은 전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구조다. 때문에 그 목적에 맞게 면세 사업자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국내 면세점과 국제적인 면세점과의 경쟁 구도를 폭넓은 시각에서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우 하이난 섬에 홍콩 총면적의 3분의 1에 달하는 공간을 확보, 복합 리조트 형식의 면세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일부는 완공된 상태다. 이웃 경쟁국들이 전력 질주하는 동안 국내 면세점들은 걷기에도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안 회장은 국내 면세점의 발전을 저해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5년으로 한정된 면세 사업 기간을 들었다.

정부는 지난 2013년에 관세법을 개정, 10년마다 자동 갱신됐던 특허권을 기존 업체도 5년마다 신규 지원 업체들과 경쟁토록 변경했다.

결국 특허 사업자가 면세점 론칭 후 면허 재획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5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어떻게 든 이익을 내야 한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 회장은 그 해소 방법으로 탄력적 특허 기간 연장 방안을 제시했다. 해당 기업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보다 그동안 투자나 실적을 올렸을 경우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속적인 관리 감독과 보완 요구, 이에 따른 제재 방안을 명문화해 시행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안 회장은 빠르면 오는 10월 예정인 만료 특허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허 심사위원들의 구성의 전문화 및 투명화 △배점 기준의 현실화 △최종 후보군 선정 후 공청회 등 보편타당한 검증 마련을 통한 최종 사업자 선정 △원스텝 쇼핑 엔터테인먼트 구성 비중의 배점 강화 등을 주문했다.

"지난해 서울에 위치한 총 6개의 시내 면세점 매출 총액은 4조3500여억원 정도입니다. 이는 전국 공항·항만·시내 등을 포함한 43개 국내 면세점에서 지난해 올린 전체 매출액 8조3077억원의 52%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정부나 기업이 면세 사업과 관련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4조5000억원대 매출이 최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더욱이 이번 메르스 사태는 물론 환율 급변, 국제 정서 변화 등 변수가 부지기수인데 지금의 면세점 운영 정책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안 회장은 "글로벌 면세점 업체들이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며 "정부와 면세사업자가 할 일이 분명히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 기관이 기업들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관광 한국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면세점 업체들과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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